정부가 부마민주항쟁 때 숨진 유치준(당시 51세) 씨를 40년 만에 국가 폭력에 의한 사망자로 공식 인정한 것은 의미가 크다. 1979년 일어난 이 사건과 관련해 희생된 이 가운데 국가 책임을 거론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국무총리 소속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는 지난 5일 열린 회의에서 유 씨가 공권력 투입과정에서 사망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긴 세월 동안 남 모를 고통 속에 살아왔을 유족을 생각하면 진작 이뤄졌어야 했다.
진상규명위가 유 씨를 항쟁 관련 사망자로 인정한 데는 사인을 자연사로 보기 힘들다는 점이 주효했다. 고인은 시위가 격렬했던 곳에서 물리적 타격에 의한 외상으로 죽음에 이르렀다. 게다가 경찰은 시신을 암매장하고도 담당 검사에게는 타살 흔적이 없으며 유족에게 인도했다고 허위보고까지 했다. 이에 진상규명위는 경찰이 공권력에 의한 죽음이라는 사실을 숨기려 의도적으로 진실을 은폐했다고 지적했다.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하면 이 판단은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그렇지만 진상규명위 조치는 이제 시작일 따름이다. 부마민주항쟁에 대해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은 까닭이다. 현재까지 진상규명위에 접수된 피해사실만 해도 300여 건에 이른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신고되지 않은 경우를 포함하면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진상규명과 보상, 명예회복, 역사적 가치 재평가 등은 아직까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또 올해 말로 임기가 끝나는 진상규명위 활동을 연장하는 문제도 지금으로서는 불투명하다.
부마민주항쟁은 장기집권을 꿈꾸던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대표적 민주화 운동 중 하나다. 당연히 우리 역사에서 아주 엄중하게 기록돼야 할 기념비적 사건이다. 특히 올해는 부산과 마산 시민들의 유신독재 체제 저항 40주년을 맞아 국가기념일 제정이 임박한 시점이다. 유 씨의 부마민주항쟁 첫 사망자 인정을 계기로 이 기간 국가 권력에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이들의 한을 풀어주는 조치가 계속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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