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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386의 일그러진 자화상 /정순백

군사 정권이 키운 세대…민주 경력은 출세 발판, 의무 소홀·도덕성 강조

조국 논란에 부정 여론…시대 사명 소멸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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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시절이 그랬다. 개인 의지와는 무관했다. 386세대를 키운 건 팔 할이 시대였다.

나의 대학 학번은 ‘83’이다. ‘386세대’의 중간 허리쯤 된다. 1990년 2월 졸업했으니, 참 격동의 시절에 대학을 다녔다. 그 시절 밥보다 이념이 중요했던 건 시대 탓이 크다. 서슬이 시퍼렇던 군사정권과 싸우던 때였으니까. 반독재 민주화는 시대가 부여한 사명이었다. 세대의 의식화는 남달랐다. 1984년 총학생회가 부활하고 금서가 풀리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팸플릿이라고 불린 요약본까지 있었다. 도식적인 학습이 가능한 시절이었다. 그러니 의식화의 속도와 확산이 빠를 수밖에. 학생 운동은 대중화했다. 1987년 6월 항쟁은 최고 훈장이었다.

세상 수 읽기에 능하다는 평가도 시대 탓이 크다. 그렇게 훈련된 측면이 있다. 학생 운동 자체가 헤게모니 싸움이 아닌가. 운동권은 노선 문제로 끝 간데없이 싸웠다. 이른바 사회구성체란 이념 논쟁이다. 민족해방(NLPDR) 제헌의회(CA) 노선 등등. 한국 사회 발전단계가 어디인가, 변혁의 주체인 민중의 범위와 대상인 주적을 놓고 치열하게 논쟁했다. 그 과정에서 수 읽는 능력은 몸에 배었다.

세대가 타고 난 운은 좋았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선 대학에 가장 쉽게 들어간 세대다. 본고사가 폐지되고 과외 금지 세대였으니 학습량이 확 준 것만은 확실하다. 정원이 70년대 학번보다 두 배가량 증가한 데다 졸업정원제로 정원보다 30% 더 입학했다. 그런데도 졸업 후 일자리는 비교적 쉽게 구했다. 웬만한 대학의 상대 공대 학과 사무실에는 대기업 취업 추천서가 넘쳐났다. 학생운동 경력은 30대에 정계 진출로 입지를 굳히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 386세대가 앞선 세대보다 제도권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주의 성향을 띠는 것 역시 이런 시절의 영향이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모두가 운동권일 수는 없다. 군사정권의 물리적 폭압에 정면으로 맞서려면 나름 용기와 신념이 있어야 했다. 현실과 타협하기에는 세상 때가 아직 덜 묻었던 청년 시절, 시대와의 갈등은 치열했을 터이다. 지식인의 사회적인 책임을 강요받던 시대였으니까. 그래서 많은 청춘은 아웃사이더를 꿈꾸며 방황했다. 척박한 현실에 발을 반쯤만 담그고 살았다는 부채 의식을 지닌 채.

30대에 겪어야 했던 IMF(국제통화기금)의 외환위기는 밥보다 이념이 중요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소 폭력적으로 깨닫게 했다. 자유가 곧 민주는 아니었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은 ‘현실 부적응이 곧 사회적 낙오’라는 정글 같은 법칙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게 했다. 하지만 살아 남은 자에게는 기회였다. 구조조정 등으로 산업화 세대의 선배가 빠진 빈자리는 386세대의 차지였다. 사회적 입지 구축이 빨랐다. 학습효과도 컸다. 무엇보다 큰 깨달음은 사회안전망이 부실하면 자기 몸뚱어리는 자기가 보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386세대는 자본의 논리에 눈을 떠 갔다. 이 역시 시대의 가르침 덕이다.
하지만 볕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게 세상 이치다. 잘나가던 386세대에도 예외가 없었다. 재평가를 받는 기성세대가 됐다. 분위기는 좋지 않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 탓에 부정적인 평가는 확산하는 형국이다. 이중성 진영논리 위선 등의 이미지가 386세대에 덧칠돼 있다. 어떤 이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장점을 잘 알고 적절히 이용한 세대라고 비아냥거린다. 어떤 이는 시대적 사명을 다했다며 이제 내려오라고 꾸짖는다.

그렇게 시절은 변했다. 중요한 건 밥이고, 삶이 됐다. 불평등이 날로 커지는 현실 앞에 이념은 공허하다. 사치다. 불평등은 ‘소득 수준’이 아니라 ‘소득 차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득 차이가 큰 사회일수록 계층 간 삐걱거리는 소리는 더 커진다. 우리 사회도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불평등 구조가 위험 수위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지배하면 기득권일 뿐이다. 그런데도 386세대는 여전히 민주와 자유를 외친다. 자본주의형으로 변신한 개인 삶과는 다른 외침이다. 그래서 청년에게는 자신들의 입지를 위한 치장쯤으로 들리는 걸 못 느낀다. 몸과 달리 시대정신만은 20~30년 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권한이 많으면 의무가 많은 법. 도덕적인 잣대도 엄격해진다.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한만 누리려는 사람이 대접받는다면 사회적 갈등의 요인이 된다. 요즘 386세대에 대한 청년의 분노는 이런 이중적인 모습 때문일 게다. 386세대의 계층 분화는 매서운 내부 비판을 부른다. 기득권과 싸우는 과정에서 기득권이 됐다고.

386세대는 이제 50대다. ‘586’이다. 오늘의 386세대를 있게 한 이념은 이렇게 시대적 사명을 다한 듯하다. 그 대신 시대정신을 업그레이드할 때가 됐다. 불평등의 생산자가 아닌 해소자로.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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