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의 ‘열하일기’에는 당대 지식인들이 학문을 교류한 이야기가 나온다. 박지원은 북경 사행단에 동행하면서 여러 학자를 만나고 그들과 교류하면서 다양한 학문 세계를 접하게 된다. 박지원은 중국의 서지학 관련 지식은 이덕무에게서 듣고 배웠고, 천문학과 관련한 지식은 홍대용에게서 들었다고 말한다. 박지원이 열하의 태학관에 머물면서 기풍액이라는 사람과 주고받은 대화에서 지구와 달, 태양에 대한 해박한 천문학 지식은 귀동냥으로 들은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그의 친구 홍대용이 학문이 뛰어나 어느 한 방면에만 국한되거나 막히지 않았다고 술회했다. ‘열하일기’에 나오는 이 부분은 홍대용의 ‘의산문답’에 나오는 실옹과 허옹이 나눈 달과 지구에 대한 대화 내용과 일치한다. 박지원은 홍대용과 학문적 교류를 하면서 천문학 지식을 습득했던 것이다. 이런 학문 교류는 당대 지식인의 일반적 경향이었다. 박지원, 이덕무, 홍대용, 정약용 같은 학자는 학문적 교류를 통하여 더 넓은 학문의 세계로 나아갔다.

정약용의 ‘흠흠신서(欽欽新書)’에 나오는 내용을 소재로 쓴 강동수의 소설 ‘정염’에는 학문의 교류로 풀지 못하는 사건을 해결한 이야기가 나온다. ‘흠흠신서’는 그 당시의 미제 사건을 해결한 수사기록이다. 강동수의 소설은 이 책에 나오는 미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미제 사건은 사랑하는 남녀 두 사람이 불에 타서 죽었는데, 가슴 부위만 불에 타고 팔과 다리는 온전한 채로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이 기이한 사건을 정약용은 이덕무에게 들었다는 중국의 기서에 나오는 내용을 바탕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이 소설에 나오는 미제 사건은 정약용이 이덕무와 학문적 교류가 없었다면 해결하지 못할 사건으로 남았을 것이다. 학문 교류는 이처럼 중요한 것이다.

학문의 교류는 조선 사회 안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조선에서 있었던 일이 사실과 다르게 기록된 부분이 있는 것은 중국의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바로잡아 나갔고, 멀리 서양의 학문은 입에서 입을 통해서 전해지기도 했고, 혹은 필사를 통해서 주고받기도 했다. 요즘과 같이 복제가 발달한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일이었지만 나름대로 학문의 교류를 위해서 노력했다. 복제 기술이 너무 발달해서 어느 것이 진실이고 허위인지를 분간할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른 현대의 상황과 비교해볼 때 속도와 기술면에서 따라가기가 힘들겠지만 자료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그 사실을 그대로 필사했기에 자료의 신빙성과 정확성에서는 결코 뒤떨어진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학문은 교류를 통해서 깊어진다. 학문의 교류를 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학문에 정통한 식견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서 학문 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 믿을 수 없는 얄팍한 지식으로 학문적 교류를 했다가는 금방 바닥이 보이게 된다. 거짓 학문으로 사람을 현혹시키는 학문은 정통한 학문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게 마련이다. 학문의 교류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학문에 정통해야 한다. 학문에 정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깊이 배우는 데서 출발한다. 깊이 배우기 위해서는 혼자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나의 학문에 대해서 스스로 정통한 학자는 다른 학문에 정통한 사람과 교류를 하면서 보다 넓고 깊은 학문의 영역에 닿을 수 있다. 학문의 교류를 위해서 자립할 수 있는 학문의 힘이 필요하다. 정약용은 학자로서 공부를 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먼저 남새밭을 일구어야 한다고 말했다. 학자와 남새밭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아해할지 모르지만, 이 말의 뜻은 큰 학문의 길을 나아가기 위해서 작은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학문의 교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깊어지는 자생의 학문을 먼저 이루어야 한다. 스스로 학문에 깊어지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이 필요하다. 고독한 시간 속에서 공부에 깊이 몰입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문학은 고독한 시간 속에서 각고의 노력을 하는 독학의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학문적 교류를 할 때 보다 깊고 넓은 학문의 세계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최근에 부산지역에 일어나는 인문학 연대는 작은 것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일구어나가는 학문의 연대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의 교류와 연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 각 연구소는 그 분야에서 스스로 얼마나 깊은 학문의 경지에 이르렀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모든 것이 인문학으로 통한다는 논리를 앞세워서 거짓으로 포장된 인문학이 없는지를 냉철하게 비판해야 한다. 작은 공부 모임으로부터 출발해서 보다 큰 인문학의 영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작은 인문학 공부를 아름답게 가꾸어나갈 줄 알아야 한다. 작은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사실을 전제로 할 때 인문학 연대는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닐까?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