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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진 칼럼] 진정한 탈일본을 결단할 때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8-22 19:38:10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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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1960대에 미국 흑인들이 삶의 권리를 인정받는 과정을 그린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와 ‘그린 북(Green Book)’. 실제 인물들의 고난과 그 여정 속에서의 변화와 꿈의 실현을 그린 영화였다. 수개월 시차를 두고 본 영화들이었지만, 영화 속 주인공들의 깊은 고뇌와 옅은 미소들이 중첩되며 지금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공통점들이 있었다. 변화하는 시대정신의 이해와 수용, 피아니스트와 수학자 그리고 엔지니어로서 능력 있는 흑인들의 의지 표현, 이를 지지하는 백인 동조자들의 존재 등…. 만약 흑인 인권을 고민했던 지도자가 없었다면, 그 흑인들이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리고 이해하고 동역했던 지원자들이 없었다면 분명 영화는 기획조차 못했을 것이고 흑인 인권의 수준 또한 같은 자리에서 맴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림 서상균
그린 북은 2019년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을 받았고, 히든 피겨스는 올해 주인공들이 실제 일했던 워싱턴DC 나사(NASA) 연방정부사무소 앞의 길 명칭을 ‘히든 피겨스 웨이(Hidden Figures Way)’로 바꾸게 했다. 이것은 영화에서 표방했던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소망을 21세기의 사람들이 재차 인정한 것을 의미한다. 두 영화가 가장 소중히 여긴 것은 바로 ‘인권’이었다. 물론 바다 건너 먼 미국 땅, 더욱이 흑인들의 인권 문제였지만, 두 영화의 지향점은 지난달부터 시작된 일본과의 경제 갈등 너머에 존재하는 문제의 본질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10여 년 전부터 본격화된 아베와 우파들의 역사수정주의 정책은 일본인의 집단 기억상실증을 유발하며, 지금까지 그들의 의도대로 맞아 들어가고 있다. 심지어 이에 동조하는 한국인까지 등장하는 혼돈의 현실이 전개되고 있다.

지난달 여름비가 세게 내리던 날, 세계유산인 ‘원폭 돔’의 보존 관리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연구실 학생들과 히로시마를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원폭 돔 주변에 넘쳐나는 금발 서양인들의 존재는 우릴 당황스럽게 했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히로시마를 찾았을까? 1박2일간 우리가 걸었던 동선은 그들의 동선과 거의 일치했다. 몇 가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왔을까? 누구를 추모하고 있을까? 문제 본질을 바로 알고 있을까? 히로시마평화공원과 원폭사망자추도평화기념관 곳곳에서 보았던 심각한 그들의 표정 속에서 세계 정복이라는 망상으로 일으킨 침략 전쟁의 가해자가 피해자로 역전되어 비춰지고, 또 자칫 만행의 주체가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 아닌 걱정을 했다. 공원 한쪽 구석에 자리한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 앞에서 티끌만 한 권리도 갖지 못한 채 피해자로만 살다 죽음을 맞이했던 3만여 선조의 한 맺힌 절규가 가슴을 아려왔다.

아베가 끌고 가는 역사수정주의의 증거는 여러 국면에서 나타난다. 가장 뚜렷한 증거들은 강제동원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 드러난다. 201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메이지 산업혁명유산’의 한 곳인 군함도. 강제동원으로 우리에겐 한 맺힌 폐허의 해저탄광이건만, 아베 정부는 4년 만에 특별한 국제 관광지로 가공해 버렸다. 더 나아가 산업시설이 아니었음에도 메이지 산업혁명유산에 포함되었던 괴상한 유산인 ‘쇼카손주쿠’를 활용한 또 다른 음모를 진행하고 있다. 쇼카손주쿠는 일제의 침략 사상을 메이지유신으로 둔갑시키며 정한론(征韓論)과 대동아공영론을 주창했던 요시다 쇼인의 학당이다. 이곳에서 조선 식민지화의 원흉이자,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한 이토 히로부미가 변질된 사상을 배웠다.

아베 정부는 쇼카손주쿠를 비롯한 관련 교육시설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준비를 시작했다. 우리 입장에선 공분할 일이지만, 이처럼 침략 야욕으로 점철된 인권 파괴와 메이지 사상의 산실이 된 장소들을 국제 동조 속에서 명소로 바꿔가는 아베 정부의 교활한 술수는 끝없이 확장될 것만 같다.

다카자네 야스노리, 하야시 에이다이, 김광렬. 모두 일본에서 강제동원과 원폭으로 희생된 조선인들을 지키며 평생을 바친 분이다. 그러나 근자에 모두 돌아가셨다. 해방을 맞은 지 74년이 되었다. 3·1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도 벌써 100년이 되었다. 1919년, 그 속에 직접 뛰어들었던 선조들은 이 땅에서 모두 사라졌다. 강제동원과 일본군 위안부로 일제에 희생당한 생존자는 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급격히 줄었다. 그나마 이분들이 살아있기에 지금 우리는 일본에 당당히 항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시간 안에 대한민국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또 상황 역전을 시켜야 한다. 일본의 역사수정주의 뒤편에는 기억의 희석과 소멸을 노리는 ‘시간 끌기’의 노림수가 감춰져 있다. 당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작금의 상황으로 몰아 온 아베 정부의 판단 근저에는 죽음으로 장애로 또한 각종 후유증으로 살아가던 희생자들의 인권은 몰인식한 채 오직 돈으로 그것도 밀실에서 합의했던 대일청구권이 자리한다. 또 지난 70여 년 동안 메이지와 쇼와 천황시대에 제국주의 침략 야욕으로 저질렀던 온갖 만행의 역사를 미화·왜곡하여 자국민에 가르쳐온 거짓 역사를 더 강한 부정으로 덮으려는 오만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지금이 중요한 것이다. 정치력에서 밀려 또다시 적당히 얼버무리며 끝낸다면, 언젠가는 자국 조상의 악랄했던 만행을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일본인 앞에서 우리는 주장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들의 가해가 식민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이를 넘어 그들이 피해자로 인식될 수 있음을 우린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강력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본NO국민운동에서 몇 발자국 더 나아가야 한다. 정의와 공의의 시대정신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일본을 이길 수 있는 의롭고도 충실한 능력을 키우며, 모든 국민과 국제사회의 공감과 지원을 끌어낼 수 있는 신뢰 찾기에 초집중해야 한다. 지금 이 시간은 진정한 탈일본의 명분을 확립하고 실천할 명백한 골든타임이다.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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