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이 땅에 있지만, 내 영혼은 조국에….”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이국 땅 에스파냐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조국 제노바를 떠올리며 한탄조로 내뱉었다는 말이다. 문득 이 말이 떠오른 것은 일요일인 지난 18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발표한 입장문을 듣고서였다. 오는 24일 광화문광장에서 ‘대한민국 살리기 집회’를 시작으로 다시 문재인 정권 규탄을 위한 장외투쟁에 나서겠다는 발표였다. 3개월 만이라고 한다. 그런데 웬 콜럼버스와 황교안?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일단 제쳐두고, 우선 600~700년 전 지중해 세계로 잠시 떠나보자.
13~15세기 지중해는 유럽과 근동, 북아프리카의 교역이 활발히 전개되던 ‘세계의 시장(市場)’이었다. 재해권을 장악하는 나라가 경제적 패권을 쥐었다. 그 각축전의 전면에 마르코폴로, 카사노바의 조국으로 알려진 베네치아와 콜럼버스의 조국 제노바가 있었다. 중세의 어둠이 막 걷히던 당시 두 나라는 강력한 해상 도시국가로서 번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는 법. 양국은 125년간 총 4차례에 걸친 치열한 전쟁을 치른 끝에 1379~1380년의 제4차 전쟁, 이른바 ‘키오자 전투’에서 최후의 승자가 결정됐다.
앞서 콜럼버스의 한탄에서 눈치를 챘겠지만, 마지막 미소의 주인공은 베네치아였다. 하나 그 승리가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1379년 8월 16일 제노바군이 베네치아의 관문 격인 키오자를 기습적으로 점령해 남쪽에서 해상봉쇄를 했을 때만 해도, 승부는 결정난 것처럼 보였다. 사전에 제노바와 밀약한 베네치아섬 서쪽 이탈리아반도의 파도바, 북쪽과 동쪽 발칸반도의 헝가리가 육지에서부터 협공을 해오는 상황이었다. 전 방위 봉쇄에 걸린 베네치아는 ‘독 안의 쥐’ 신세였다. 게다가 베네치아가 당장 투입 가능한 전투선은 ‘명량해전 12척’의 절반 수준인 6척뿐이었다. 제노바 해군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절대적 열세였다. 697년 시민이 직접 국가원수(도제)를 뽑는 공화정을 시작하며 건국한 이래 최초로 겪는 절대위기였다.
그렇다면 베네치아가 이 난국을 헤치고 최후의 승자가 된 비결은 무얼까. 위기를 기회로 극적으로 전환시킨 것은 요술도, 요행도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국란(國亂)’에 대처하는 베네치아인의 합일된 자세였다. 80세에 육박한 노(老)원수부터 귀족, 시민, 부녀자가 혼연일체가 된 ‘거국일치’를 이뤄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밀 한 톨 재배할 땅이 없는 베네치아의 봉쇄 상황 속에서 식량은 불과 3개월남짓 견딜 수 있는 것이 다였다. 정부는 배급제로 전환했고, 귀족들은 창고를 열었다. 봉쇄 중에 식량 부족을 호소하는 병사에게 국가원수 콘타리니는 “귀족의 집으로 가라. 하나밖에 없는 빵이라도 둘로 쪼개 줄 것이다”고 말했고, 그렇게 실행됐다. 귀족과 정치가들은 일체의 정쟁을 중단하고, 자발적 기부에 더해 스스로 참전 서약을 했다. 부녀자들은 경쟁적으로 패물과 금붙이를 내놓았다.
승패가 결정된 후는 어떻게 됐을까. 베네치아는 1797년 나폴레옹 군대에게 패해 운명을 다할 때까지 인류사에서 유일무이한 ‘1100년 공화국’으로서 독립국의 지위를 지키며 유럽의 경제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다. 반면 전쟁 중에도 4대 정파 간 정쟁을 일삼았던 제노바는 패전 이후 5년간 무려 10명의 원수를 갈아치우는 등 정쟁을 되풀이하다가 프랑스, 밀라노, 에스파냐의 지배를 잇따라 받으며 식민지로 전락했다가 19세기 이탈리아에 복속됐다.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운명은 이렇게 극명하게 달라졌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보자. 대한민국은 일본과 건곤일척의 한 판 경제전쟁에 나선 참이다.능히 ‘국란’이라 부를 만하다. 국민들은 제2의 경술국치를 당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극일(克日)’을 향한 공감대와 에너지를 응집해 가고 있다. 정부 역시 외교적 대화의 문은 열어 놓되,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선다는 입장을 수차례 천명했다. 그런 와중에 황 대표의 정권을 향한 장외투쟁 돌입 선언이 나왔다. 뜬금없다는 말로도 부족한 황망한 일이다. 제1야당으로서 대정부 투쟁을 하는 것은 자유겠지만, 국란이나 다름없는 때에 거리로 나서면 과연 누가 가장 좋아할까? 문재인 정권의 실패와 또다시 친일 정권의 도래를 바라며 도발을 감행한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일본 극우정치세력 아니겠는가? 내 식구 밉다고 도둑에게 문을 열어 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콜럼버스가 조국 제네바를 그리며 터트린 한탄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래서 황교안 대표의 오는 24일 장외투쟁 돌입 선언이 허망하다. 최근 나온 북한식 표현을 빌리자면 “황소가 웃을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오는 22일은 1910년 일제가 총칼을 겨누고 친일파들까지 앞세운 채 순종 황제를 겁박한 끝에 한일강제병탄 조약을 맺은 치욕스러운 날이고, 29일은 경술국치일이다.
편집부국장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