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DC의 포토맥강변을 따라 조성된 호수는 해마다 4월이면 수천 그루의 아름다운 벚꽃이 활짝 피면서 장관을 이룬다. 그 화사한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기에 4월의 벚꽃축제는 워싱턴의 주요한 연례행사가 되었다. 그런데 미국에 웬 벚꽃? 이런 물음을 따라가 보면 100여 년 동안 미국과 영국, 다시 말해 서구 문명과 굳건하게 손잡고 호수의 벚꽃들처럼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일본 외교의 힘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과거의 역사에서(아니 어쩌면 현재까지도) 일본의 외교력과 우리 민족의 운명은 상반되는 관계에 있었다. 이 벚나무들은 1905년 7월 ‘카쓰라 태프트 밀약’의 주역이었던 미국의 27대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 시기에 일본의 제공으로 심겼다. 카쓰라 태프트 밀약은 러일전쟁의 전세가 일본으로 기울자 미국과 일본이 상호 한반도와 필리핀에서의 지배를 승인하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 일본은 1902년 영국과 함께 동맹을 맺어 남하하는 러시아를 견제하고 동아시아의 이권을 분할하는 외교를 펼쳤으니, 20세기 초부터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대서양 문명 강대국의 파트너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은 독일 이탈리아 등 다른 파시스트 국가들과 동맹을 맺어 제2차 세계대전의 아시아 태평양 전장에서 미국을 상대했다. 그러나 패전국 일본의 지정학적인 가치는 새로운 패권국인 미국에게도 유효했다. 냉전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가속화되었으며, 조지 케난의 구상대로 일본은 미국의 대소련 봉쇄의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가졌다. 1951년 맺어진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전후 패전국 일본의 이권 상실을 다루었지만, 동시에 미국은 일본과 미일 안전보장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일본에게 새로운 냉전 시대에 미국의 주요한 동맹 파트너로서 외교적 지위를 부여했다. 한반도의 분단도 냉전과 함께 응고되고 견고하게 지속되었으니, 일본의 외교적 지위와 이해관계는 한반도의 분단 지속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분단의 냉전 구조에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협상의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번에는 일본 아베 정부가 본의 아닌 현상변경을 시도하고 있다. 분단 냉전 구조에서 가장 수혜를 많이 받은 자가 변화를 발생시키고 있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아베 정부의 우리 정부에 대한 수출 규제조치 그리고 지난 2일 백색국가 리스트(수출 절차 우대국) 제외는 일본 나름의 이유가 있어 보인다. 우리 사법부의 강제동원 노동자에 대한 배상 판결과 총선 승리를 위한 한국 때리기라는 정치적인 동기에서 비롯되었다고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국제 정치경제적인 맥락의 큰 그림으로 아베 정권을 이해해야 우리의 대응도 완전할 수 있다.
한반도는 근대 이후 일본에게 그리고 현재의 아베 정권에게 일종의 안전판과 같은 것이다. 70여 년간 지속되었던 한반도의 냉전 구조가 북미 간 협상으로 해체되려고 하는 즈음 이에 불안을 느낀 아베 정부가 역사 문제를 경제 문제로 전환하면서 한국을 공격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역사 문제가 경제 문제화되었지만, 한일 간 분쟁의 우열은 외교 무대에서 판가름날 것이다. 명분과 논리에서 우리가 좋은 위치에 있다.
첫째, 국제사회는 이미 나치의 사례처럼 ‘인도에 반하는 범죄’에 관한 보편적 가치를 수립하는 노력을 해왔다. 200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국제회의는 식민지배와 노예무역까지도 과거의 반인륜적 행위를 조명했다. 물론 현재까지 일본과 유럽의 옛 식민지배 국가들은 도덕적인 잘못은 인정하지만 법적인 배상 의무는 없다고 주장해왔지만, 이 사안을 결국 21세기에 식민지배 자체를 불법화화는 규범으로 정착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전환시켜야 한다,
둘째, 한일 간 경제전쟁에서 우리가 유리한 위치에 있다. 자유무역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본의 조치를 세계무역기구에서 호소하는 전략을 잘 강구해야 한다.
셋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힘이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어 북미 관계가 개선되어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정착되면 아베 정부의 기획도 힘을 잃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의 건설을 강조했다. 우리의 국력을 외교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워싱턴의 벚꽃과는 다르게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우리 외교의 힘은 무엇일까?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