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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가을을 준비하는 법 /김나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8-18 20:02:21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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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가 코앞이다. 문득, 책 읽기에 좋은 때는 다 지나갔는가 싶다.

외출이 두려운 여름이야말로 최적의 독서 환경이 아닌가 한다. 바깥 열기를 차단하고 책장을 넘기며 빠져드는 재미를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한때 불면과 탈수로 고통스러운 여름밤을 보낼 때, 무사히 넘기게 해 준 것도 약이 아니라 책 읽기였다. 이후 여름이면 평소 읽히지 않는 두툼한 책을 읽자는 목표를 세웠다.

왜 유독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했을까. 먼 산마다 단풍이 뜨겁게 타는데 어찌 책상머리에 앉아있다고 한들 문장이 눈에 들어오겠는지. 당장 자연으로 들어가 단풍에 물들기도 바쁜데 책을 읽으라고 독서의 계절을 강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생각도 든다.

막바지 더위도 곧 무릎 꿇고 시름시름 물러갈 터. 절기가 반갑기도 하고 스산하기도 하다. 폭격하듯 퍼붓던 볕의 기세가 수그러들겠다는 안도감과 한 해가 어느덧 내리막길로 접어든 때라는 수선함 때문이다. 곧 백로에 추분까지 들이닥치면 밖으로만 나돌려는 심사를 책상 앞에 붙들어 두긴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여 책은 먼지만 덮어쓸 것인즉, 그때가 오기 전에 밀린 책을 읽어야겠다며 가을 맞을 준비를 한다.

무조건 새 책을 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책장을 훑어보면 한 번 읽고 그대로 잠자는 책이 대부분이다. 이런 책을 다시 읽으면 읽는 시기에 따라 전혀 새로운 감으로 읽힌다. 또 의욕으로 사놓기만 한 철학서 같은 무거운 책을 꺼내 찬찬히 읽다 보면 이전에는 읽히지 않던 문장이 머릿속에 등불을 켜기도 한다. 이는 세상을 보는 시각과 사고와 연륜이 성장하고 변화했다는 뜻일 것이다.

다시 읽자고 책꽂이에서 꺼낸 책마다 메모지가 울긋불긋하게 붙어있다. 마치 지난 추억이 깃든 앨범을 펼치듯 감회가 인다. 90쪽 분량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은 세 토막을 내서 들고 다녔다. 이렇게 읽은 기억 때문인지 유독 애착이 간다. 여러 번 읽은 책도 있는데 어른이 읽는 동화 생텍쥐페리의 명작 ‘어린 왕자’를 그 첫째로 꼽는다. ‘중요한 건 이 눈에 보이지 않는 거야’라는 문장에서 머문 기억이 있다. 파울로 코엘료가 쓴 ‘오 자히르’도 그중 한 권이다. ‘눈에 보이며 실제로 존재하고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일단 그것과 접하게 되면 서서히 우리의 사고를 점령해 나가, 결국 다른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어떤 사물 혹은 사람. 그것은 신성일 수도, 광기일 수도 있다’라는 자히르. 책갈피마다 유독 메모지가 많이 붙어 있다. 문장 한 줄 놓치지 않은 앤디 메리필드의 ‘당나귀의 지혜’도 있다. ‘당나귀와 함께 행복을 찾아 떠난 어느 도시인 이야기’라는 부제가 어느 정도 내용을 내비친다. 1966년 작 프랑스 영화 ‘당나귀 발타자르’를 보게 됐고, 노예의 삶과 흡사한 당나귀 발타자르의 생애에 구슬펐으며, 무채색 영화 전편에 깔리는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0번 A장조의 애잔한 선율을 알게 한 책이다.

건축물이 드리우는 그림자에 매혹될 때 공간의 시인이라 불리는 건축가 정기용이 쓴 ‘사람 건축 도시’를 읽었다. ‘건축과 도시는 궁극적으로 사람의 삶을 조직하고 사회를 다루는 분야로 인문사회과학과 그 궤를 같이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는 계기가 됐다.

책 속으로 피서를 떠나기도 하고, 여행에 책을 동반하기도 한다. 대체로 여행지에서 다 읽은 적은 없지만, 비상약처럼 필수로 챙겨야 든든하다. 최근 여행 때 읽은 책은 김영하 산문집 ‘여행의 이유’다. 메모하는 작가정신을 흉내 내서 여행지별 메모 노트를 준비하는 센스를 갖추게 한 책이다. 책 내용을 다 기억할 수는 없어도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불쑥 가을과 맞닥뜨리더라도 허둥대지 않을 마음 준비로 독서만 한 게 있을까 싶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들 한다. 아직 남은 열기를 그 길에 들어가 식혀볼 일이다.

수필가·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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