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5월 ‘과연 아름다운 조화(令和)가 될 것인가?’라는 칼럼을 이 지면에 실었다. 일본이 나루히토 새 일왕의 시대를 맞아 연호를 ‘레이와’로 정하고 그 의미를 ‘아름다운 조화’로 한다고 했지만, 자민당 정권의 그 동안의 행보를 보건대 대내외적으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기는 힘들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채 2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이다.
일본은 7월 우리나라에 대해 수출규제라는 경제 선전포고를 자행했다. 이후 국제신문은 일본의 경제보복을 규탄하며 수많은 기사를 생성하였다. 100여 편을 훌쩍 뛰어 넘는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일본의 저의는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일제강점기 자행했던 과거사 문제에 대해 한국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것이다. 부끄러운 자신들의 과거가 다시 들추어지는 것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둘째, 일본을 넘어 세계적으로 도약하고 있는 한국의 첨단 산업 발전을 견제하려는 의도이다. 소위 가마우지 경제라 불리는 경제적 관계를 이용하여, 한국의 발목을 잡으려는 생각이다. 셋째, 개헌 세력을 규합하여 전쟁 가능한 국가로 탈바꿈하겠다는 저의다. 외부에 공격대상을 둠으로써 내부의 결속을 다진다는 전략이다. 넷째, 남북관계에 있어 지분을 찾아보겠다는 속셈이다. 그동안 소외되었던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남북한의 관계개선을 희망하지 않는 것이 명백해 보인다.
이웃 나라에 대해 터무니없는 구실로 경제보복을 자행하는 일본을 보면서, ‘국가의 품격’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개인이나 국가에게 있어 품격을 유지하게 하는 기본 요소이다. 일본도 전통적으로 ‘부끄러움의 문화’가 있기는 하다. 일본인에게 가장 부끄러운 일은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동, 즉 메이와쿠(迷惑)를 끼치는 것이다. 그들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을 ‘염치(廉恥)의 정신’으로 부른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가 있다고 자부하는 나라가 이웃나라에게 부당하게 피해를 입히는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고 있다. 자신들이 말하는 ‘염치의 정신’을 잃어버리는 처사이다. 중국의 깨어 있는 지성이라 불리고 홍콩의 민주화 시위인 우산혁명을 주도한 정치철학자 짜우포충은 ‘국가의 품격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더 퀘스트)’에서 정치철학의 중요한 임무는 ‘공적 정당화’에 있다고 했다. 또한 공적 정당화의 목적은 명예와 권력, 이익 획득이 아니라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정당함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행동이 과연 공적 정당함이 있는지 묻고 싶다.
그동안 한국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도 그다지 품격 있는 국가라 할 수 없다. 한일 양국이 어지러운 틈을 타 독도 상공을 비롯하여 우리의 영공에 무단 침범하고도 적반하장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주변 강대국들의 횡포를 보면서 100여 년 전 그들에게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조상들의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특히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로서, 그 정신과 의미를 생각하면 더욱 씁쓸한 마음이 든다. 8·15 광복절을 앞두고 일본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이 더 이상 품격을 떨어뜨리지 말고 이웃 나라에 대한 ‘염치의 정신’을 갖기를 바란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언론의 역할과 노력도 매우 중요하다. ‘국가의 품격과 저널리즘 외교(김성해 외, 한국언론재단)’에서는 게임의 규칙이 급변하는 국제사회 정세 속에서 언론의 역할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한국의 고민을 공유하고 관점을 지지할 수 있는 국제적 네트워크의 구축은 물론 ‘진실하고, 정확하고, 균형 잡힌’ 고급 담론을 통해 우리의 입장을 국제사회로 전달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외국 언론과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양질의 정보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며, 나아가 지속적인 설득 작업을 통해 우리의 관점을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어려운 시기에 국제신문이 이 일에 앞장서 나가기를 기대한다.
부산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