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청년의 소리] 북어의 삶 /차동욱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8-13 19:23:54
  •  |   본지 25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어느 재수학원의 아침. 오늘도 어김없이 학생들을 깨우기 위해 기숙사 구석구석에 음악이 울려 퍼진다. 노래가 끝나고 나서야 은수의 눈이 부스스 떠진다. 시간을 확인해본다. 오전 6시5분. 기상 음악이 길었던 덕에 침대에 5분이나 더 누워있을 수 있었다. 평소보다 긴 기상 음악이 길어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이제 강의동으로 가서 수업을 듣는다. 모르는 영단어가 나와, 찾아볼 생각에 휴대전화를 연다. 그의 휴대전화는 하얀색 폴더폰이다. 많은 수험생은 집중에 방해가 될까봐 스마트폰 대신 이 폴더폰을 쓴다. 휴대전화이긴 하나, 연락엔 잘 쓰이지 않는다. 공부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은수도 휴대전화를 영어 사전이나 단어장 용도로만 쓸 뿐,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진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게 그에겐 편하다.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하루 중 은수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게다가 오늘은 그가 좋아하는 떡볶이와 감자튀김이 나왔다. 왠지 하루가 잘 풀리는 것 같다. 점심뿐이랴, 오늘의 마지막 수업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사다. 한국사는 입시 성적에 들어가는 비율이 낮아 부담 없이, 마음 편하게 수업을 들을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한국사 시간까지 끝나고 이제 저녁 시간이다. 저녁 메뉴 자체도 좋았지만 더 좋았던 건 식후에 매점에서 사먹은 아이스크림이다. 예전의 그는 단 하루라도 아무 걱정없이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종종 빠지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저녁 먹고 이렇게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을 수 있다면 썩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다 쉬었으니, 이제 강의실로 돌아가 자습을 해야 한다. 문학 문제집을 펴본다. 오늘은 최승호 시인의 시 ‘북어’부터 풀 차례다. 시를 빠르게 읽어본다.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 막대기 같은 생각 /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은수의 마음속에 아무런 울림 없이 시가 지나간다. 그는 이 시에서 말하는 북어가 자기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스무 살 청년이 북어라고 칭해지며 비판받는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시 속의 북어들이 그에게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라며 아무리 부르짖어도 소용없다. 은수는 북어가 아니다. 아무튼 아니다.

그리그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자기가 북어인지 아닌지 하는 그런 안일한 생각에 빠져있을 수는 없다. 어서 다음 시, 다음 문제로 넘어가야 한다. 다 풀고 나서 은수는 채점을 해보았다. 다 맞았다. 오늘 본 시들이 어떤 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전보다 빠르게 풀고 많이 맞혔으면 그걸로 된 것이다. 일과를 마치고, 기숙사에 돌아와 하루를 되돌아본다. 기상 음악이 길었던 것부터 시작해 점심엔 떡볶이를 먹었고, 8시간 수업 중 1시간은 한국사였고, 저녁엔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평소에 어려워하던 시 문제들도 오늘은 모두 정답을 맞혔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하루였다. 그리고 이러한 날들이 그가 수능을 치르고 의대에 합격하고 전문의가 될 때까지, 11년이나 계속되었다.

의대에 입학해도 그는 학생의 ‘본분’에 충실했다. 매주 치는 시험에 하루 8시간 수업, 6시간의 자습을 유지했고, 시간이 모자라 밤을 새우는 일도 잦았다. 이런 생활을 하다 보니 외부와는 단절됐다. 홍콩 시위가ㄷ 발생한 지 나흘이 지나서야 알았고, 우리 정부의 새 의료 정책도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알았다. 그는 높은 성적을 받아 자기가 원하는 과를 가기 위해, 홍콩 시민들이 처절하게 시위를 벌이는 동안, 우리나라의 의료 정책이 한창 논의되는 동안, 발바닥 근육 이름을 외우고 있었다. 참고로 그는 안과 지망생이다.

누구에게나 이따금씩 생기는 조그마한 여유가 있다. 은수는 그 찰나의 여유 동안 그저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거 먹고 즐거운 곳 갈 수 있으면, 사소하지만 벅찬, 충분한, 행복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내일이 시험이고, 다음 주도 시험이고, 다다음 주도 시험인 상황에서도 행복을 느낀다. 정말?

오늘도 북어가 바싹 말라간다. 어선 밖을 바라보지 못한 고기는 이렇게 북어가 되었다.

동아대 의학과 1학년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캉이가 남기고 갈 ‘북항 활성화·기후 대응’ 숙제
  2. 2아파서도, 부적응도 아니다…고교 자퇴 71% ‘내신 세탁용’
  3. 3부산 이전 1차 공공기관 4곳, 수도권에 여전히 495명 잔류
  4. 4세입자 보증금 안 준 前 금정구의원…추가 피해 확산
  5. 5민주항쟁사 한 폭에 담은 작가 “부마정신 헌법에”
  6. 6구·군 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논란, 부산 5곳 폐지 결정…4곳은 “고수”
  7. 7부산행 KTX 하부 패널 파손…승객 300명 열차 갈아타
  8. 8부산국제영화제 11년 만에 ‘관객 20만’ 재돌파
  9. 9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10. 10[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1. 1[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2. 2[속보] 김민석 "'조희대 탄핵 추진' 논의 공식화"
  3. 3이 대통령 "부마항쟁과 5·18, 헌법 담아내야" 국회에 개헌 논의 촉구 (종합)
  4. 4北, 잠수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 2종 시험발사(종합)
  5. 5이헌승 "국제신문 실질적 대주주 조사 미흡" 질타에 부산노동청장 "다음주 면담"
  6. 6李대통령 지지율 39%, 하락세 멈췄다…민주 36% 국힘 27%
  7. 7李대통령 “국무회의 비공개 동의못해…할말 못하는 국무위원 없다 확신”
  8. 8李대통령 “부마항쟁과 5·18 헌법 수록 개헌, 국회가 나서달라”
  9. 9이 대통령, 김지용 첫 출근에 "피아구별 없이 엄중 수사하길"
  10. 10이혼소송 중 주소 노출…서울고법원장, 아내 살해 공무원 사건에 “제도개선”
  1. 1부산 이전 1차 공공기관 4곳, 수도권에 여전히 495명 잔류
  2. 2부산TP 수장 중기부 승인…신임 기관장들 내주 취임
  3. 37.5% 폭락 ‘녹아내린 코스피’…7000서 7일 만에 5500으로(종합)
  4. 4누리호 탄 군집위성, 발사 14시간 만에 첫 지구 촬영 성공
  5. 5‘신뢰 시그널’ 없는 증시…외인 이달만 18조 투매
  6. 640돌 수산무역협회도 부산시대 연다
  7. 7부산 9월 취업자 9000명 늘었지만…'경제허리' 40·50대 3만명↓
  8. 8모건스탠리 “고물가 고착화 위험에 한은 내달 금리 올릴 듯”
  9. 9부산항에 석유 보세구역…북극항로 선박연료 생산·공급
  10. 10AI 투자 회의론 고개…글로벌 반도체주 ‘먹구름’
  1. 1부캉이가 남기고 갈 ‘북항 활성화·기후 대응’ 숙제
  2. 2아파서도, 부적응도 아니다…고교 자퇴 71% ‘내신 세탁용’
  3. 3세입자 보증금 안 준 前 금정구의원…추가 피해 확산
  4. 4민주항쟁사 한 폭에 담은 작가 “부마정신 헌법에”
  5. 5구·군 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논란, 부산 5곳 폐지 결정…4곳은 “고수”
  6. 6부산행 KTX 하부 패널 파손…승객 300명 열차 갈아타
  7. 7고성서 세계적 산악인 엄홍길 대장과 함께하는 등산축제
  8. 8“장림항 레저보트 철수명령 정당” 대법 확정
  9. 9예고 임용강사·학원장 겸직, 전국서 부산예고 가장 높아
  10. 10거짓자백 받았나…法, 17년전 ‘창원 택시기사 살인’ 재심청구 인용
  1. 1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2. 2득점은 킹, 리바운드는 롱…KCC 살릴 ‘믿을맨’ 찾았다
  3. 3자금 숨통 틔웠다…LIV골프 살아날까
  4. 4[뭐라노] 롯데, 이젠 성찰할 때
  5. 5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6. 6인종차별 당한 엄지성…英 경찰 수사
  7. 7거인 3년 연속 7위…레이예스·한동희는 날았다
  8. 8황성빈은 첫 도루왕…끝까지 뜨거웠던 타이틀 경쟁
  9. 9한화, 새 사령탑에 류지현…3년 20억원
  10. 10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원자력 청출어람, 스승을 가르치다
국제칼럼 [전체보기]
사라지는 것, 귀 기울일 것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기고 [전체보기]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도청도설 [전체보기]
은정이라는 이름
다시 영화의 시간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요추부 척추관협착증, ‘메포츠’로 극복하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초대 중수청장, 내편 네편 아닌 국민편에 서라
지자체, 현수막 법 준수하고 실태부터 파악해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다민족 사회
부캉이가 북항에 던진 질문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거울 속의 외계인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