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4월 말 미국 로스엔젤레스(LA)에서 대규모 흑인 폭동이 일어났다. 흑인 운전자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 고속도로 순찰대 소속 백인 경찰들이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 원인이었다. 흑인 뿐 아니라 평소 차별대우를 받던 히스패닉계 주민까지 가담하면서 폭동은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이 과정에서 LA에서 영업을 하던 한인 상가들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참다 못한 한인들이 자경대를 만들었다. 이들은 산탄총 등으로 무장한 채 폭도들에 맞서 생존의 터전을 지켜냈다. 나중에 미국의 주요 언론은 한인들의 일사불란한 군사 대오에 혀를 내둘렀다는 식의 보도를 했다. 그러면서 한인 남성들은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 대부분 군복무를 했으며 이 때의 경험이 위기상황에서 큰 힘을 발휘한 것 같다는 분석을 했다.
보도 내용만을 듣게 되면 미국 시청자들은 한국 남성들이 총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재주를 가진 것처럼 생각할 만하다. 그러나 대한민국 내에서 총기를 만질 수 있는 기회는 군복무와 예비군 훈련 때가 전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총기 소유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는 까닭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총기를 구매할 수 있는 미국 등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총기 소유의 자유가 있다 보면 사고 발생은 필연적이다. 미국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총기 사고가 터져 나온다. 이로 인한 사망자는 매년 4만 명에 이른다. 이라크 전쟁에서 전사한 미군보다 더 많은 숫자다. 얼마전에도 텍사스주 엘패소와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이틀 사이 총기 난사로 31명이 숨졌다.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총질은 최악의 범죄다. 당연히 자성의 목소리도 높아진다. 사안이 너무 심각한지라 평소 총기 소유 권리를 보장한 수정헌법 2조를 옹호해왔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총기규제 강화 의지를 피력하고 나섰다. 그는 “정신 질환자 및 이상자의 손에 총기를 맡겨서는 안된다”며 총기 구매자에 대한 신원조회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는 전미총기협회(NRA)의 입김이 워낙 커 총기규제가 불가능할 것이란 여론이 대세다. 회원만 550만 명에 이르는 이 단체는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정·관계에 전방위적 로비를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내로라하는 정치인 가운데 이들의 도움을 받지 않은 이가 드물다고 한다. 이러니 앞으로도 총기 난사를 막을 제도를 만들기는 역부족일 듯하다. 세계 최강국이자 민주주의 수호국이라는 미국의 숨은 민낯이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