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고교 시절에는 충(忠)이란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싫었다. 군사정권이 강요하는 맹목적인 충성이었을 뿐이다. 그때는 정부와 정권이 곧 나라라고 생각했다. 조국과 민족에 대한 충성과 군사정권에 대한 충성을 구분하지 못했던 시절이다. 그래서 학교 조례 때나 저녁 국기 하강식 때 애국가를 제창하는 것이 싫었다. 애국가 제창 역시 강요된 충성의 일환이었다. 애국가를 4절까지 외워 부르는 시험도 쳤던 기억이 있다.
이 같은 편견은 한국축구 대표팀이 4강 신화를 만들어 가던 2002년 월드컵 때 완전히 깨졌다. 감격한 청춘들이 태극기를 몸에 두른 채 애국가를 부르고 거리를 뛰어다니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응원가처럼 소리 높여 부르는 게 낯설기조차 했다. 역시 애국과 애족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강산이 두 번쯤 변한 뒤에야 충의 본뜻이 ‘올곧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충의 대상이 나라이지, 정부와 권력이 아니라는 깨달음과 함께. 나라를 사랑하는 노래라는 애국가와 충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현재 애국가는 세계적인 음악가로 평가받는 안익태가 작곡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0년 12월 20일부터 공식 사용했다고 한다. 해방 후 귀국한 해외 독립운동가들 특히 임시정부 계열 세력이 정국 주도권을 쥐게 되면서 한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 영향으로 애국가는 관습상으로 우리나라의 국가가 됐다. 지금도 애국가를 국가로 직접 규정한 법률은 없다.
하지만 작곡자 안익태가 2009년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르고, 친나치 행적까지 드러나면서 사회적인 논란이 됐다. 게다가 작사자도 대표적인 친일파 윤치호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 때문에 국가를 다시 제정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반일 감정이 고조되면서 다시 애국가 폐기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라는 제목으로 공청회를 개최했다.
교체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도 있다. 애국가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부르면서 관습상의 국가가 됐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애국가는 4·19 혁명, 부마항쟁,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 등 시민 저항의 역사와 함께했다.
현재 폐기 여론은 커 보이지 않는다. 향후 향배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국민이 좋아한 애국가가 친일파 산물이란 사실만큼은 유쾌하지 않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