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본 첫 느낌은 그랬다. 평생 일탈이라고는 해보지 않았을 듯했다. 기존 질서는 거역하지 않는 ‘범생’ 같았다. 먼 산을 보는 듯한 근엄한 표정, 가발처럼 보이는 반듯한 헤어스타일, 절제된 몸가짐 그래서 더 차갑게 느껴졌다. 단조로운 중저음의 유체이탈식 화법은 핵심을 비켜가려는 의지의 반영으로 보였다. 자기주장은 드러내지 않는 게 살아남는 데 유리할 수 있다. 모난 돌이 정 맞는 법이니까.
그래 맞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게서 고건 전 총리의 그림자를 본 것은 이런 이미지 때문이었다. 고 전 총리가 누구인가. ‘처세의 달인’이 아닌가. 여야를 넘나들면서, 대통령 빼고는 사실상 다 해 본 인물이다. 가급적 윗사람의 뜻은 거스르지 않는 게 이인자의 최고 덕목이다. 최고 권력자 1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이것보다 효과적인 게 없다.
이런 황 대표가 지난 2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권을 장악하는 걸 보고는 깜짝 놀랐다. 경기고를 나온 최고 엘리트의 법조인이, 그것도 꽃길만 걸어오다 60대 초반에, 국무총리와 대통령권한대행까지 마치고 여의도 정치에 발을 내딛자마자 거대 야당의 당권을 장악했다. 예상치 못한 결단력이었다. 정치 신인으로서는 전당대회 출마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배박(배신한 친박)’ 논란을 이겨낸 정치 입문이었다. 취임 직후 행보도 좀 놀라웠다. 대여 투쟁을 강화하면서 당 지지율을 더불어민주당의 턱밑까지 끌어올리기도 했다. 패스트트랙 국면에서 장외집회 주도 때 분위기는 최고였다. 안정감 있다는 평가는 차기 대권 주자로서 무엇보다 반가운 선물이었다. 당을 완전히 접수(?)하는 듯했다.
거기까지였다. 역시 현실 정치판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반짝 반등했던 당 지지율은 예전으로 복귀했다. 당내는 균열 조짐이다. 고질적인 계파 갈등은 폭발 직전이다. 황 대표의 리더십을 의심하는 층이 늘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언론에 많이 등장하는 이회창 전 국무총리와의 비교는 지지층을 불안케 한다. 대부분 같은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관측한다. 결코 유쾌할 수는 없다. 이 전 총리가 누구인가. 대권 문턱 바로 앞에서 주저앉았지 않았나. 그것도 두 번씩이나. 절대 패배할 수 없다고 분석된 선거였다. 보수층으로서는 애가 탈 만하다. 정권을 꼭 탈환해야 하는데, 보수층 내에서 때 이른 대표 교체론이 나오는 이유다. ‘황교안호’ 출범 5개월여 만의 일이다.
아직 황 대표의 지지율은 여야 잠룡 중 1, 2위를 다툰다. 그런데도 왜 벌써 불길한 결말을 그리는 걸까. 황 대표의 발목을 잡는 것은 무엇인가. 언론의 분석은 대략 이렇다. 먼저 ‘도로 친박당’ 논란이다. 주요 당 보직은 친박계 인사가 상당수 차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관계 단절은 고사하고 얹혀 있는 모양새다. 대표 얼굴만 바뀌었을 뿐 당이 달라진 게 뭐냐는 탄식이 나온다. 당이 과거로 돌아갔다는 말이다. 다음 대선 구도가 지난번 대선처럼 탄핵 찬반 세력 구도로 전개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결과는 패라는 관측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더욱이 ‘5·18 망언’ 등의 관계자를 경징계 처분하면서 당은 우측으로 더욱더 가는 듯하다. 대중에게 그렇게 비친다. 여기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장 자리를 둘러싼 당과 박순자 의원의 다툼 과정에서는 보수 품격의 밑바닥까지 드러냈다.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의원들의 막말, 이는 황 대표의 당 장악력 문제로 이어졌다. 뼈아픈 것은 성과 없는 당의 외연 확장이다. 20대 청춘은 청년 실업으로 고통받는데, 자영업자는 최저임금 문제로 불만이 폭발 직전인데, 이들을 지지층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실패했다. 대안 정당으로서 신뢰성을 의심받은 탓이다.
기존 질서를 지키는 것에만 능하고 모험을 하지 않는 관료 시절의 습성이 몸에 밴 것일까. 정치는 정글 같은 곳인데, 안과 밖 모두가 온통 적인데, 무엇을 봉합한다는 것인가. 모든 걸 얻으려면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법. 그래서 리더십이 중요하다. 무엇을 도려내고, 무엇을 안을 것인지는 리더의 선택이다. 여기에 개인 정리가 끼어들면 끝장이다. 의리가 충성으로 왜곡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대선은 1명만 살아남는 게임이다. 2등은 의미 없다. 선택은 민심이라는 심판관이 한다. 최고 권력자 1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처세로는 얻을 수 없는 게 민심이다. 세상에 가득 찬 모순과 갈등을 헤쳐나갈 비전과 희망도 보여줘야 한다. 적어도 탄핵 정국 때 잃어버린 보수에 대한 국민의 믿음은 되살려야 한다. 따뜻한 밥만큼은 보수가 더 많이 보장해 줄 것이라는 그런 믿음 말이다.
무릇 경쟁 구도는 비슷한 게 최적이다. 여야 구도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한쪽으로 너무 기울면 어떤 면에서 정상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황 대표의 분발을 기대한다. 파이팅! ‘황교안’.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