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을 왼쪽 옆구리에 끼고 19번 국도를 따라 오르다 보면 전북 남원이다. 그 남원에서 전북 장수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중간 어름에 ‘수분재(水分峙)’가 있다. 이는 치, 령, 재로 읽기도 부르기도 한다. ‘물을 구분하여 나눈다’는 뜻을 지닌 이 수분령 고갯마루에 가문비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빗물이나 서리가 남쪽 가지에 맺혔다 떨어지면 섬진강 물이 되고. 북쪽 가지에서 맺혔다가 떨어지면 금강의 물이 된다고 하였던가. 그 수분령을 중심으로 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의 팔공산 데미샘은 섬진강의 발원지가 되어 예서 오백여 리를 흐르고, 장수군 수분리 588번지 신무산의 뜬봉샘은 금강의 발원지가 되어 일천여 리를 흐른다. 흘러 우리나라 최고의 평야(김제, 만경)를 가졌다가, 이윽고 군산을 통해 서해로 흘러드는 강이다.
한반도 서남녘에 이러한 큰 강이 둘씩이나 있어 그에 기대 살아왔던 우리일 터이다. 하나 금강이 만들어낸 그 너른 평야는 피 어린 수탈로 인한 항쟁의 역사를 썼고, 남해로 흘러드는 섬진강 역시 왜구들 노략질의 물길이었으며,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의 길이었으며, 다시 조선수군 승리의 길이었다가, 마침내 이 강이 바다와 하나 되는 노량에서 질긴 전쟁을 승리로 끝내고 순국한 사실 또한 잊을 수 없는 역사인 것이다.
이제 이 두 강의 물줄기의 운명 역시 확연하게 바뀌고 말았다. 그야말로 천리길 금강에는 아픈 발톱이라는 하굿둑을 비롯하여, 4대강 사업으로 세종보 공주보 백제보 등 3개의 보를 만들어 물길을 꽁꽁 묶어 버려 강 아닌 강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나마 다행히도 4대강 사업을 피한 섬진강이 있어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이 위안은 다른 4대강을 끼고 살아가는 이들에겐 염치없는 말일 터여서 조심스럽다.
강의 물길은 생명의 물길이다. 먼 바다 오호츠크해를 돌아 다시 섬진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떼의 길로도 열려 있고, 은어 황어 참게 장어들의 길로도 활짝 열려 있다. 늦여름부터 늦가을까지의 섬진강은 생명의 존엄함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산란을 마친 은어나 연어들의 자연사한 모습들이 섬진강 백사장을 덮을 때, 그 장면은 차라리 눈물겹다. 낙동강도 하굿둑으로 막히기 전의 모습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낙동강 하굿둑에 둑방이 들어서자 재첩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산다는 일에 주눅 든 술꾼들의 해장국이 사라졌고, 헐한 가격으로 사람을 가리지 않던 그 따끈한 국물이 낙동강에서 사라지자, 그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섬진강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사는 가장 작은 조개가 가장 깊은 국물의 맛을 낸다. 그 맛은 무릇 모든 맛의 맨 밑바닥 기초의 맛이다. 맺히고 끊기는 데가 전혀 없는 풀어진 맛이다’라고 작가 김훈은 자신의 산문집 ‘자전거 여행’에 써놓고 있다. 아마 그 기초의 맛은 사람의 근본과도 맞닿아 있어서 ‘봄날 아침 안개’와 같은 국물의 색깔을 낼 것일 터이다. 애초 사람의 근본은 그 격이 동격이라, 있고 없음과 낮고 높음을 가리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리라. 한 그릇의 재첩국을 두 손 모아 받게 하는 겸허한 국물. 하여 ‘삶에 기진맥진한 사람들의 식은땀을 멈추게 해 준다’라고까지 적어 놓았겠는가.
마침 이번 주 금요일(오는 26일)부터 일요일까지 사흘 동안 하동 송림(천연기념물 445호) 백사장에서 제5회 섬진강 문화 재첩축제가 열린다. 이 재첩축제에는 ‘황금재첩을 찾아라’라는 단위행사가 치러지는데, 이는 우울한 현실을 건너가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힘내십시오” 하는 위로의 뜻도 담겨 있을 터여서 반갑다.
‘지리산 앉고 섬진강 참 긴 소리다’라고 썼던 대구의 문인수 시인은 하동포구 팔십 리 길은 ‘무통(無痛)의 시간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이라고도 표현했다. 그 ‘무통의 길’을 따라 섬진강으로 와서, 황금재첩 또는 은재첩을 건져내는 행운까지 따라준다면 팍팍한 세상을 견디며 살아가는 힘이 또다시 솟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도 저도 안 된다면 섬진강에서 갓 잡아 올린 ‘은어회라도 바득바득 씹어보면’ 한순간의 시름이야 잊을 만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섬진강만이 나눌 수 있는 축복일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