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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여전히 미심쩍은 정치권 ‘물갈이’ 약속 /염창현

1년 앞 다가온 총선 겨냥 여야 정치 신인 발굴 주력

당리당략 집착하지 말고, 참신한 인물 대거 천거로 구태 쇄신 기회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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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성인이 윗사람에게서 ‘구상유취(口尙乳臭, 입에서 젖비린내가 난다)’라는 말을 노골적으로 들었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그것도 평범한 소시민이 아니라 나름 지명도를 가진 정치인이라면. 대개는 뒷감당이 두려워 작정하고 대들지는 못할 터. 그러나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꼰대 짓 하지 마시라’며 분한 마음을 속으로 삭힐 게 분명하다.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에서는 대권 후보 경선이 치열했다. 이때 후보 지명전에 뛰어든 김영삼(44세) 의원이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왔다. 당내의 고루한 인사들로는 대선 승리 가능성이 희박하니 젊은 후보를 내세워 선거를 치러야 승산이 있다는 논리였다. 뒤이어 김대중(45세), 이철승(48세) 의원도 이런 흐름에 합류했다.

이에 66세의 유진산 신민당 총재는 ‘정치적 미성년’ ‘구상유취’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이들의 돌풍을 평가절하했다. 그렇지만 노장파와 소장파의 기싸움 승자는 40대 의원이었다. 김대중 의원은 김영삼·이철승 의원을 꺾으며 대선 후보로 지명됐다. 그는 여세를 몰아 대통령 선거에서도 45.25%의 지지도를 획득해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53.2%)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유 총재로서는 당시 ‘40대 어린 의원’들의 부상을 시기상조라 느꼈을 법하다. 구상유취라는 말을 쓴 것도 그들의 능력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경륜을 더 쌓아 다음을 노리는 게 낫다는 선의에 따른 것이라 여겨진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야심 가득 찬 40대 의원들의 능력을 기존 잣대로만 재려한 것이 상황 판단 실수로 이어져 버린 셈이 됐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대교체는 정치권에서 늘 논쟁이 되는 사안이다. 젊고 참신한 인물들의 발굴이 이어지지 않으면 변화를 갈망하는 유권자의 마음을 잡기 힘드나 기득권자의 반발도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그러나 고인 물은 반드시 썩는 법.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도 새 피 수혈에 들어갔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달 초 정치 신인이나 청년에게 20% 가산점을 주는 경선 원칙을 확정했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민주당보다 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정치 신인에게는 40%에서 최대 50%까지 가산점을 부여하는 혁신안을 만들어 최종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 두 당 모두 총선 승리를 위해 정치 초년생들의 진입 장벽을 이전에 비해 훨씬 낮추는 승부수를 던졌다.

여야가 규정한 청년층 기준은 통상 만 45세 이하다. 더 구체적으로는 이 나이대 인물 가운데 공직선거에 처음 나서거나 당내 경선에 출마하지 않은 이들이 대상이다. 내년 선거는 2022년 치러질 20대 대선의 향방을 점쳐볼 수 있는 시험대인지라 청년 출마자라는 무기를 활용해 정국 주도권을 잡아보겠다는 게 정치권의 복심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여야가 해 온 모습을 보면 이런 경선 규칙이 정치 쇄신을 이루겠다는 순수한 의도에서 만들어졌다고 여기기에는 뭔가 미심쩍다. 민주당은 한사코 부인하고 있으나 신인 우대 정책이 청와대 출신이나 대통령 측근 인사들의 정치권 진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활용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한국당의 조치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나왔을 터다. 제1 야당의 정치력 부재 등으로 국민 지지도가 바닥을 헤매는 상황이어서 어떤 식으로든 반전의 기회를 잡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는 까닭이다. 얼마 전 자체 여론조사에서는 20, 30대의 정당 호감도가 아주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으니 시쳇말로 ‘표만 된다면’ 물불을 가릴 여유가 없다.

한편으로는 정치권이 뭔가 큰 착각을 하는 부분도 있다. 어느 정도 물갈이만 된다면 유권자들이 열화 같은 지지를 해 줄 것으로 안다.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나라 정치가 국민의 지탄을 받는 가장 큰 원인이 민의를 나 몰라라 하는 낡아빠진 행태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정치 신인이 부족해 생긴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수차례 치러진 지난 총선을 복기해 보자. 적지 않은 소장파가 국회에 입성했지만 달라진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당리당략에 급급한 정치권은 목전의 승리를 위해 물갈이를 전가의 보도처럼 이용했다. 신진 세력들도 당선 이후 언제 그랬느냐는듯 구태에 빠져 들기는 마찬가지였다.정치권의 새 피 수혈론이 유권자의 눈을 현혹하기 위한 ‘깜짝 쇼’였다고 몰아붙여도 틀린 말은 아닌 이유다.

여야가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바탕으로 기존 정치판을 확 뒤집어 보겠다면 이를 깎아내릴 국민은 없다. 그런 만큼 여야는 옥석을 가리기 위한 세밀한 과정을 멈추지 않아야 마땅하다. 그런 뒤 진짜 숨은 보석을 찾아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게 아닌, 총선 승리만을 위한 구태의연하고 판에 박힌 물갈이라면 국민은 더 피로해질 뿐이다.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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