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석에서 이윤원 롯데 자이언츠 단장을 만났다. 야구 이야기는 되도록 안 했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얘기는 그랬다. 너무 힘들어 사람을 피한다고, 경기가 끝나면 곧바로 숙소로 들어간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후반기에는 팀을 추슬러 잘해봐야지 않겠느냐고 했다. 적어도 올해까지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뉘앙스로 들렸다. 그러고는 꼭 일주일 뒤 사퇴 소식을 들었다.
롯데의 전반기 성적은 34승 2무 58패, 승률 0.370이다. 압도적인 꼴찌를 달리다가 9위 한화 이글스가 더 ‘압도적인’ 성적으로 내리막을 타는 덕에 승차 없는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올 시즌 전에 롯데가 이렇게 무너질 거라고 예상한 이는 없었다. 급기야 외국인 용병을 2명이나 바꾸고 이대호를 6번 타자로 돌리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효과는 없었다. 선발투수가 버텨주면 타선이 침묵했고, 타선이 겨우 살아났다 싶으면 불펜이 말아먹는 등 안 되는 집안의 전형을 보여줬다. 기막힌 성적에 구단뿐만 아니라 팬들도 멘붕에 빠졌다. 오죽하면 팬들 사이에 ‘선수 태업설’ ‘조원우 명장설’이 돌았겠는가.
부산 출신으로 롯데의 레전드인 양상문 감독도 결국 독이 든 성배를 견디지 못했다. 사실 지난해 10월 양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을 때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다. LG 트윈스를 맡아서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고, 시장에는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감독들이 있었다. 누구보다 롯데를 잘 안다는 평이었지만 성적과는 연결되지 않았다. 또 명투수 출신으로 투수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주길 기대했지만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갔다. 성적이 오롯이 감독 탓은 아니지만 책임을 져야 하는 게 감독의 숙명이다. 그렇게 양상문과 자이언츠의 재회는 시즌을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불명예 퇴진이라는 새드엔딩이 되어버렸다.
이윤원 단장의 경우 억울한 측면이 적지 않다. 이 단장은 2014년 소위 ‘롯데 선수단 CCTV 감시 파문’ 이후 흐트러진 팀을 수습하기 위해 그해 11월 부임했다. 쉽게 말하면 롯데그룹 기조실 핵심인사가 파견 나온 것이었다. 선수 출신도 아니고 야구단 프런트 경험도 없었지만 그는 탁월한 마케팅 능력과 전폭적인 선수단 지원으로 구단 안팎에서 주목을 받았다. 특히 그룹의 실세답게 거액의 구단 운영비를 받아내 최근 몇 시즌 FA시장에서 큰손으로 군림했다. 실제로 구단 연봉은 10개 구단 중 1위다. 공격적인 투자로 이대호를 복귀시켰고 민병헌을 데려왔다. 팬들을 위한 마케팅도 뛰어나 타 구단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많은 투자에 걸맞은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운영자금을 끌어오는 능력은 보여줬지만 성적 부진이라는 굴레와 팬들의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단장과 감독 투톱의 사퇴는 롯데가 최하위로 떨어질 때부터 예견된 지도 모른다. 2015년부터 올해까지 롯데는 3명의 감독을 경질했다. 팬들의 기대와는 다른 감독을 선임하고 성적 부진으로 경질하는 상황이 되풀이됐다.
비상 시국을 헤쳐나가야 할 공필성 감독대행 체제에 대한 불안도 크다. CCTV 감시 파문 당시 팀 수습을 위해 프런트에서 공 코치를 감독으로 임명하려고 했고 이에 선수단이 반대성명서를 내고 집단 항명한 전례가 있다. 이 때문에 공 코치는 한동안 롯데를 떠났다. 당시의 선수 중 지금도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가 많다. 수석코치와 감독대행의 무게감은 엄연히 다르다. 공 대행이 선수들과 어떤 케미스트리를 보여줄지도 관심거리다. 골수팬 중에는 벌써부터 그때를 떠올리며 최악의 선택이라고 탄식하는 이도 많다.
프런트도 달라져야 한다. 구단은 지난 6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운영팀장이 바뀌었고 TF팀이 2개 생겼다. 하지만 야구계에서는 성적 부진의 일부 책임이 있는 실세 팀장이 자리를 바꿔 더 중요한 보직을 맡았다는 평이 많았다. 구단은 외부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꼴찌를 하더라도 혁신하는 모습,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팬심도 돌아올 것이다.
전반기 성적을 본다면 롯데는 이번 시즌은 포기하는 게 맞다. 후반기 7할 승률을 기록한다 해도 가을야구는 어렵다. 2017년 시즌 막판까지 무서운 상승세를 타며 리그 3위까지 치고 올라간 ‘롯데의 부활’은 현재론 불가능해 보인다. 새 시즌 준비를 위한 리빌딩에 나서는 게 훨씬 현실적인 선택이다.
팬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차기 감독 선임 이야기가 나온다. 차라리 롯데와 인연이 없고 팀 장악능력이 뛰어난 감독을 영입하라는 목소리가 높다. 구단은 팬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롯데의 앞날을 위한 게 무엇인지 판단하고 결단해야 한다. 터무니없는 우승 약속을 할 게 아니라 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팬들은 지금 우승하라는 게 아니다. “느그가 프로냐”고 외치고 있다.
디지털미디어국장 dol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