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지위가 인권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과 갑질을 금지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일명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첫날인 지난 16일 오거돈 부산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더 조심하고, 더 경계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오 시장은 “직장 내에서 가장 괴롭힘을 많이 하는 사람이 제가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직원 여러분을 주눅 들게하는‘땡깜(호통)’, 깊은 밤 정적을 깨는 메신저 알림음, 안 마셔도 된다며 권한 숱한 술잔을 더 조심하고 경계하겠다”고 다짐했다.
2000명이 넘는 시 직원을 이끄는 그가 말단 직원에게까지 머리를 조아리듯 쓴 ‘참회’의 글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동시에 스스로도 후배들에게 ‘꼰대질’이나 ‘갑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갑자기 대두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동안 기업체는 물론 공공기관, 심지어 학교 사회에서도 수많은 갑질과 괴롭힘이 존재했다. 법 시행 첫날 오전 9시 한국석유공사 직원 19명은 고용노동청 업무가 시작되자마자 민원실을 찾아 진정서를 제출했다. 회사가 뚜렷한 기준·근거 없이 부당한 대우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취업 준비생 사이에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석유공사가 ‘1호 사건’의 당사자가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같은 날 전교조 부산지부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는 더 충격적이었다. 한 초등학교 교장은 교사들에게 자녀 결혼식 하객이 차량에서 먹을 간식 봉투를 만들게 하고, 다른 교장은 교장실에서 나갈 때는 뒷모습을 보이지 말고 뒷걸음으로 나가라고 지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떻게 임용 시험에 합격했는지 모르겠다” “IQ가 100도 안 되는 거 같다”와 같은 폭언을 당한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아끼는 후배여서’ ‘더 잘했으면 하는 바람에’‘조직의 발전을 위해’라는 핑계로 갑질이 자행됐지만 대부분 묵인되고 방조됐다. 이젠 그런 핑계가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됐다.
일부에서는 법 시행으로 오히려 조직 문화가 경직되고 선후배 간 유대감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과거에 당연하게 여겨지던 일이 ‘해서는 안 되는 일’로 바뀐 데 따른 불편함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일부가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게 모두가 편해지는 지름길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사회부 차장 junny9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