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90원.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이다. 지난해보다 2.87% 올랐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진통 끝에 지난 12일 새벽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했다. 재계는 동결되지 않아 아쉽지만 만족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노동계는 크게 반발했다.
연례행사처럼 느껴지는 이런 진통을 보면서 누구나 승복하는 기준은 없는지 궁금하다. 고무줄 늘이듯 최저임금을 올렸다 내렸다 할 게 아니라 뚜렷한 근거에 따라 액수를 논의해야 한다. 최저임금위는 기자들이 인상의 근거를 묻자 사용자위원 측에 문의하라고 했다고 한다. 최저임금위 누리집을 살펴보면 이와 관련한 자료가 하나도 없다. 지난해는 전년보다 10.9% 올려 위원장이 기자회견까지 하며 설명한 것과 대비된다.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최근 경제 사회 여건에 대한 정직한 성찰의 결과라고 본다”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사용자위원들은 이번 결정을 두고 “내년도 인상률은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금융 위기와 필적할 정도로 어려운 현 경제 상황과 최근 2년간 급격하게 인상된 최저임금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 영세기업, 소상공인이 절실하게 기대했던 최소한 수준인 ‘동결’에 이르지 못한 것은 아쉬운 결과”라고 평가했다.
2.87% 인상의 근거는 무엇인가. 흔히 근거로 동원되는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보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5%, 물가상승률은 1.1%로 예측된다. 이번 인상분은 이 두 지표를 합한 것에도 미치지 못한다. 회의록이나 속기록마저 공개되지 않아 국민은 대체 무슨 근거로 이 같은 결론을 냈는지 알 수가 없다.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을 이처럼 결정해도 되는지 묻고 싶다. 이를 공개하는 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지만 국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니 이마저도 기대하기 어렵다. 대부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는 회의 내용을 공개해 어떻게 최저임금이 결정됐는지 알 수 있도록 한다.
OECD 소속 국가들의 최저임금위가 어떤 근거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지 살펴봤다. 독일은 연방통계청이 월별 임금(시급) 현황을 집계해 임금 지표를 작성하고, 최저임금위는 이 임금 지표를 바탕으로 임금 인상률 등을 고려해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경기 현황과 고용 환경 등도 참고한다. 영국은 전문가에 용역을 맡긴 다음 이를 바탕으로 심의한다. 경제 고용 등에 관한 통계청 자료를 주로 참고하는데, 근로시간 및 소득 조사, 주당 평균 소득, 국민소득 등을 살펴본다. 결정할 때는 이틀 정도 호텔에 들어가 끝장 토론을 하며 만장일치로 합의안을 도출한다고 한다. 합의의 전통을 중시하는 국가답다.
프랑스는 소비자물가지수가 직전 최저임금 책정 시점의 지수와 비교해 2% 이상 상승하면 같은 비율로 최저임금에 이를 반영한다. 멕시코는 경제성장률, 임금인상률, 근로자의 생계비 등을 고려해 결정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요소를 고려할 텐데 설명이 없으니 정치적 결정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 최저임금을 지역별로 다르게 정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때다. 최저임금은 노동자의 최저 생활선을 국가가 정한다는 의미가 있어 국가 단위에서 단수로 정해 왔다. 지역마다 생활 수준과 물가가 다른 점을 고려해 이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1991년 지방의회가 구성돼 30년이 다 된 한국의 지방자치제 역사를 고려하더라도 이를 지역에 돌려주는 게 맞다.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선진국이 지역에 따라 최저임금을 달리한다. 현재 수도권과 지방은 경제력과 소비력에 큰 차이를 보인다. 부산과 서울을 비교하더라도 평균 아파트 가격은 3배가량 차이가 난다. 최근 한 아르바이트 포털이 자사 플랫폼에 등록된 시급 데이터 960만여 건을 분석했더니 시·군·구별 평균 시급 격차가 최대 746원에 달했다. 시·도가 최저임금을 결정하지 못하게 하는 배경에는 지방은 이를 결정할 능력이 없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위원회가 결정한 과정을 보면 누가 능력이 없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정권 눈치 보지 않고 합리적 기준으로 정할 수 있다고 본다.최저임금도 이제 지방이 결정해야 할 때다.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