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역사보다 더 역사 같은 두 소설 /박명호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7-11 20:03:52
  •  |  본지 2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꼭 있었던 것’을 사실(事實)이라 하고, ‘참된 것’을 진실(眞實)이라 한다면 역사는 사실을 지향하고, 소설은 진실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 소설이 더 역사에 가깝고 역사가 더 소설 같을 때가 많다. 그래서 오히려 소설은 사실을 지향해야 하고 역사는 진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역설이 가능하다.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는 정사 삼국지보다도 더 역사 같다. 정사 삼국지는 소설 삼국지연의에 참고용에 불과해져 버렸다.

‘역사는 가정이 없다’란 말은 역사에 감정을 배제하고 부인할 수 없는 사실만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역사에 감정이 개입하면 원한이 쌓이고 과거에 대한 원한풀이로 현재와 미래를 망치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 한이 많다는 것도 어쩌면 이런 역사를 보는 태도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역사상 가장 큰 비극과 불행이랄 수 있는 병자호란에 관한 두 편의 소설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강도몽유록(江都夢遊錄)’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억울하게 죽은 여인들의 귀신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강화도에서 죽은 수많은 사람의 시신을 거두는 일을 하는 한 선사의 꿈에 열다섯 여인의 혼령이 모여 울분을 토로한다.

첫 번째 여인은 당시 영의정을 지낸 김류의 부인으로서, 남편이 능력 없는 아들 김경징에게 강도 수비의 책임을 맡겼는데, 아들은 술과 계집에 파묻혀 강도가 쉽게 함락되었다며, 남편과 아들을 함께 비난한다. 두 번째 여인은 김경징의 아내로서, 세 번째 여인은 왕후의 조카딸로서, 남편은 전쟁 중에 눈이 멀고 그 부모도 돌아가셨다며 애통해 한다. 네 번째 여인은 왕비의 언니로서, 적군이 들어오기도 전에 자기 아들이 자기를 찔러 죽이고서 정렬로 표창케 한 사실을 어이없어한다. 이어서 남편과 시아버지 아들 등의 책임을 개탄하며, 심지어는 남편이 살기 위해 오랑캐의 종이 되어 상투를 잘랐다고 비난한다.

그 밖에 다른 부인들이 절개를 위하여 죽은 것은 모두 기록할 수 없었으며, 천인(賤人)의 아내와 첩도 또한 자결한 사람이 많았다. 적에게 사로잡히어 적진에 이르러 욕을 보지 않고 죽은 자와 바위나 숲 속에 숨었다가 적에게 핍박을 당하여 물에 떨어져 죽은 자,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당시 처참한 상황이 너무 잘 그려져 있다. 갑자기 청군이 들이닥치자 정절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아버지, 남편, 아들 등 가족에 의해 살해되거나 한 시신들이 바다에 낙엽처럼 떠 있었고, 그렇게도 죽지 못한 목숨으로 십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이 청나라까지 끌려갔다. 그중에 전후 협상으로 가족이 돈을 주고 데려온 여인들은 ‘화냥년’이라 해서 평생 천대와 비난을 받았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비극이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조선은 사실상 망해버렸다.
‘허생전’은 그 뒤 청의 속국(식민지)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우리 지식인(양반)의 그릇된 가치관을 그린 소설이다.

“소위 사대부란 것들이 무엇이란 말이냐? 오랑캐 땅에서 태어나 자칭 사대부라 뽐내다니, 이런 어리석을 데가 있느냐? 의복은 흰옷을 입으니 그것이야말로 상인이나 입는 것이고, 머리털을 한데 묶어 송곳같이 만드는 것은 남쪽 오랑캐의 습속에 지나지 못한데, 대체 무엇을 가지고 예법이라 한단 말인가? 번오기는 원수를 갚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고, 무령왕은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기 위해서 되놈의 옷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제 대명(大明)을 위해 원수를 갚겠다하면서, 그까짓 머리털 하나를 아끼고, 또 장차 말을 달리고 칼을 쓰고 창을 던지며, 활을 당기고 돌을 던져야 할 판국에 넓은 소매의 옷을 고쳐 입지 않고 딴에 예법이라고 한단 말이냐?”

백 년도 훨씬 넘는 세월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그들은 과거의 역사에 머물러 아직도 감정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도 우리의 복수가 아닌 명나라를 위해 복수한다고 한다. 병자호란을 자초한 것도 명나라를 위해 명분을 지킨다는 소중화중의 가치관 때문에 피할 수도 있는 화를 자초한 것이다. 청이 우리에게 같은 오랑캐 민족끼리 형제 예우를 해달라는 요구를 거절했다.

‘북벌론’은 이미 관념이 돼버렸다. 직접 실행할 의사도 없으면서 말로만 북벌이라 하면서 정신적 위로, 또는 정신 승리 하는 양반의 사고방식을 비판하고 있다.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오랜 세월 산에서 무예를 닦아 마침내 원수를 죽이는 무협지류의 역사 인식에 젖어 온통 주변 나라들과 끊임없이 역사 전쟁을 벌이는 현재 우리의 모습을 보면 연암의 꾸짖음이 더 크게 들린다.

소설가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부산교통공사

 많이 본 뉴스RSS

  1. 1[진료실에서] 오십견 치료 늦으면 후유증 클수도
  2. 2국악계 명인들, 김정수 감독 취임 축하위해 부산 온다
  3. 3칸 황금종려상 ‘기생충’ 1000만 관객 돌파
  4. 4사망률 1위 폐암…맞춤형 표적·면역치료로 장기 생존율 높인다
  5. 5톱스타 송중기·송혜교 부부, 위자료·재산분할 없이 이혼
  6. 6[세상읽기] 한국 첫 경제학자가 쓴 ‘윤리학 교과서’ /이호철
  7. 7정두환의 공연예술…한 뼘 더 <40> 한여름밤 음악회의 소확행
  8. 8붕괴 우려 경고에도 방치하더니…죽도공원 암벽 ‘와르르’
  9. 9부산한국당 공천 ‘이언주 변수’…내년 총선 전 입당해 출마 유력
  10. 10[서상균 그림창] 우주 관측
  1. 1한일갈등 분수령 직면 文대통령…"할 수 있다" 극일 의지 강조
  2. 2태풍 “다나스” 피해에 따른 해양쓰레기 수거 총력 추진
  3. 3부산한국당 공천 ‘이언주 변수’…내년 총선 전 입당해 출마 유력
  4. 4욕설·몸싸움…막장 치닫는 바른미래당
  5. 5부산 개조론-경제 실정론…부산 여야 총선 앞두고 ‘경제전쟁’
  6. 6“정의당, 부산 9곳 총선 후보 내겠다”
  7. 7호르무즈 파병·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유지…청와대, 미국 움직일 카드로 검토
  8. 8부산진구 연지동 새마을지도자 결연경로당 어르신 삼계탕 대접
  9. 9여야, 추경 처리 의사일정 합의 불발
  10. 10국회 외통위, ‘일본 수출규제 철회 촉구 결의안’ 여야 만장일치 채택
  1. 1한국해양수산개발원 차기 원장, 강준석·장영태·정명생 3파전
  2. 2난항 겪던 ‘시청앞 행복주택’ 가구 수 축소로 ‘가닥’
  3. 3줄잇는 e스포츠 행사…부산 게임도시 외연 넓히기
  4. 4대우건설, 괴정3 재건축 시공 맡는다
  5. 5부산~강릉 동해선 전 구간 전철 달린다
  6. 6예·적금 1% 금리 예고 속, 카카오뱅크 ‘5% 상품’ 출시 1초 만에 다 팔려
  7. 7ICT 수출 8개월째 내리막
  8. 8극지해설사 9월부터 전국서 활동한다
  9. 9‘국민 생선’ 고등어 1인당 연간 2.8㎏ 소비
  10. 10‘7말8초 여름휴가’ 8800만 명 이동
  1. 1(2보) 부산 시민단체 일본영사관 진입, 아베규탄 시위...경찰과 충돌
  2. 2도살 위기 부산 구포시장서 구조된 개, 11마리 새끼 낳아
  3. 3수영구 광안리 해수욕장 쓰레기 수거 총력
  4. 4‘사법농단’ 양승태 석방… 재판부 직권보석 결정, 양승태 측은 반발
  5. 5카카오뱅크 5% ‘1초 완판’ 논란에 “예금 절차는 이후 링크를 통해 보내 준 것
  6. 6광안리 해수욕장, 태풍 ‘다나스’의 흔적…쓰레기로 가득찬 모래사장
  7. 7오늘 절기상 ‘중복’…태풍 지나간 뒤 폭염 시작 되나
  8. 8진해 선박 제조업체 구조물 붕괴로 5명 부상
  9. 9부산진구 중복맞이 삼계탕 6천그릇 나눔 행사
  10. 10양승태 전 대법원장, 법원 보석 석방 결정 수용하기로
  1. 1손흥민 롤모델 호날두 맞대결 “항상 위협적인 선수”
  2. 2토트넘, 유벤투스에 승리…손흥민 ‘우상’ 호날두와 유니폼 교환
  3. 3 출발대 장비 문제 속출…홀로 뛴 선수들
  4. 4제12회 태종대 혹서기 전국 마라톤대회 성료
  5. 5디 오픈 챔피언십, 박상현 16위로 대회 마무리
  6. 6윔블던 '선전' 권순우, 투어 대회 단식 본선 진출
  7. 7여자수구, 최종전 쿠바에 0-30패…최종 16위로 마무리
  8. 8보르도 황의조, 프리시즌 매치서 데뷔전…후반 교체 출전
  9. 9라우리, 클라레 저그 품고 생애 첫 메이저 우승…박상현 16위
  10. 10황의조, 프랑스 보르도 입단 첫 경기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이기대·청사포가 눈앞서 사라진다면
2030엑스포 개최에 관한 간절한 소망
기고 [전체보기]
안전한 급식으로 아이들에게 건강을 /박희옥
약사 위상강화와 전문 보조인력 필요성 /정연일
기자수첩 [전체보기]
비만 오면 반복되는 악몽 /배지열
창업 정책 보는 시각 교정할 때 /민건태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기생충의 세상, 그 우화의 이면
‘나이 듦의 미덕’이라는 어려운 과제
김정현 칼럼 [전체보기]
기꺼이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음악과 통일
국악, 월드뮤직을 꿈꾸며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인권을 넘어설 지위는 없다 /이병욱
한국 ‘기술독립’이 급하다 /조민희
도청도설 [전체보기]
新친일파 논란
‘파리 목숨’ 감독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데이비드 호크니의 첫 생각
낭독의 문화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은근한 풋내, 곤드레밥
대통령도 즐긴 화포 메기국
사설 [전체보기]
공중선 지중화 신공법, 안전·미관 개선 기대 크다
시·업체 다툼에 이용객만 피해 본 화명야외수영장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건강보험 하나로’와 문재인 케어
정년, 노인 연령 기준 그리고 노인 복지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바람둥이 화가의 영원한 사랑
고흐보다 더 아파보였던 의사
이홍 칼럼 [전체보기]
창의성, 한국기업의 다음 생존전략
파괴적 정쟁 역사의 데자뷔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선거제 개혁 제대로 이뤄질까
부산시 정무라인을 향한 시선들
제언 [전체보기]
광안대교, 해양안전 감시시스템 구축을 /이윤석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7월의 음악예찬
플래툰과 현을 위한 아다지오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의 온도
와인 속의 삼총사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김정희를 흠모한 이한복
1952년 부산 영도 해안
  • ATC 부산 성공 기원 달빛 걷기대회
  • 제5회 극지 해양 도서 독후감 공모전
  • 부산관광영상전국공모전
  • 유콘서트
  • 어린이경제아카데미
  • 어린이극지해양아카데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