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부산 해운대 누리마루APEC하우스에서 해운·물류업계 관계자가 대거 모여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진해운 파산으로 위기에 처한 우리 해운산업을 재건하고 세계 5위권 해운강국으로 육성하는 사령탑 역할을 맡은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출범 1주년을 맞아 기념행사를 연 것이다. 지난해 7월 해양진흥공사가 출범할 당시 해운업계는 ‘기대 반 우려 반’의 태도를 보였다.
정부가 출자한 1조4800억 원의 설립자본금으로 출발한 해양진흥공사는 정부의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에 발맞춰 지금까지는 사업을 제대로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1년간 현대상선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매각했던 부산항 신항 전용터미널(HPNT) 지분 50%를 확보해 운영권을 되찾도록 도왔고 국내 선사들이 국제환경 규제에 대응하도록 지원했다. 무엇보다 국적 원양선사인 현대상선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집중적으로 지원했다. 해운업 일각에서는 현대상선에 지원이 집중됐다며 불만을 토로했지만 정부는 일단 대형 국적선사인 현대상선을 살리는 데 전투력을 쏟아부었다.
해양진흥공사는 현대상선의 선복량 확대를 위해 2만3000TEU급 12척과 1만5000TEU급 8척 등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을 새로 건조할 수 있게 금융 지원을 했다. 현대상선은 내년부터 잇달아 선박을 인도받게 된다.
정부의 이런 노력 끝에 현대상선이 내년 4월부터 세계 3대 해운동맹 중 하나인 ‘디 얼라이언스’에 정회원사로 가입하게 됐다. 해운회사는 아무리 크더라도 세계의 모든 항로에 배를 보낼 수 없어 주요 해운동맹에 가입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디 얼라이언스는 독일의 하팍로이드, 일본의 ONE, 대만의 양밍 등 3개사가 주도하는 해운동맹이다. 선복량(컨테이너 적재 능력)으로 따지면 2M(머스크·MSC) 얼라이언스, 오션 얼라이언스(CMA-CGM·COSCO·에버그린)에 이어 해운동맹 중 3위다. 그동안 현대상선은 세계 최대 해운동맹인 2M과 협력 관계를 유지했지만 정식 회원이 아니어서 차별 대우를 받았다.
2M은 우리나라 해운업이 다시 기지개를 켤까 경계의 눈길을 보냈다. 현대상선이 지난해 초대형 선박을 발주하자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M 고위 관계자가 현대상선의 초대형 선박 발주를 두고 ‘미친 짓’으로 평가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현대상선이 선박 20척을 인도받으면 지금의 배인 80만 TEU의 선복량을 확보하게 돼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 우리나라는 글로벌 선사들과 경쟁하며 해운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한진해운이 2017년 파산하면서 우리나라 해운업은 과거의 명성을 잃었다.
다행히 정부가 지난해 해운 재건 5개년 사업을 발표하고 해운산업 재건의 발판을 다지고 있다. 2015년 39조 원에서 2016년 29조 원까지 떨어졌던 선사들의 전체 매출액이 지난해 34조 원으로 회복됐고 연근해 컨테이너선사 각각 2위, 3위인 장금상선과 흥아해운이 컨테이너 부문 통합법인을 오는 10월 출범하기로 하는 등 선사들의 자발적인 구조개선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현대상선이 디 얼라이언스에 합류한 것도 당장 내년에만 초대형 선박 12척 인도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해운 재건 정책으로 현대상선의 선박 발주를 돕지 않았다면 동맹에 끼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란 뜻이다.
현대상선이 새 동맹에 가입하게 된 것은 국내 해운업계에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현대상선이 실적 개선을 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라고 지적한다. 현대상선은 지난 1분기까지 16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초대형 선박 20척을 인도받더라도 선박금융 비용이 많이 들어 이익을 내기 쉽지 않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현대상선은 디 얼라이언스 정회원사 가입에 들뜨지 말고 비상한 노력으로 경영 정상화를 이뤄야 할 것이다. 출범 1주년을 맞은 해양진흥공사도 해운시장의 불확실성이 지속하는 만큼 현대상선뿐만 아니라 중소 선사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해운업 특화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해 해양금융시장의 마중물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조직을 재정비해야 할 때다.
해양수산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