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심 탈레브(59)의 책은 독했다. ‘독설’이라는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을 찾기 어려운 문장이 책에서는 줄줄이 나왔다. 책을 읽다 가끔씩 ‘이래도 되나’ 싶었다. 최근 나온 나심 탈레브의 ‘스킨 인 더 게임’(비즈니스북스)을 읽는 동안, ‘뇌의 온도’가 좀체 내려가지 않는 독특한 독서 체험을 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잘못되더라도 아무런 책임이나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 상황에서 하는 주장이나 설득은 믿음이 가지 않는다. 대학에서 발표되는 논문은 대부분 후자의(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바보 지식인이자 인맥을 중시하는 관료로 대표할 수 있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국 재무부 장관을 지낸 티모시 가이트너는 재직 당시 금융업계에 퍼 준 막대한 구제금융의 대가로….”

나심 탈레브는 널리 알려진 책 ‘블랙 스완’의 저자다. 미국 월가에서 금융 트레이더로 일하다 ‘철학 에세이스트’로 직종을 바꿔 경제·금융·사회과학을 관통하는 저서 여러 권을 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저술가가 됐다. ‘스킨 인 더 게임’에 깊이 빨려들고 만 것은 저자가 강조한 두 가지 때문이었다. 첫째, 자기의 핵심 이익을 걸고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직접 참여해 책임을 다하는 사람의 정책이나 조언이 아니라면 가치가 없다. 가까이하지도 믿지도 말라. 둘째, 결국 답은 분권화에 있다.

비록 저자가 이 책에서 분권화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상을 풍부하게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임과 분권이라는 제언에 눈길이 꽂히지 않을 수 없었다. 지방분권이 우리 사회의 화급한 과제이며 화두임을 거듭 설명할 때 그의 제안을 적용할 수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참고로 금융 전문가라는 바탕을 가진 그는 책에서 이런 말도 했다.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시장 참여자가 아니라 시장 구조다.…시장 구조만 올바르다면 바보들이 잔뜩 참여하더라도 시장은 제대로 작동한다.”

한국 사회에 지방분권이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아무리 외쳐도 ‘메아리’가 없어 공허해지기에 십상이다. 지방분권을 정책으로 실천해 ‘한국 전체’를 살리는 일이 급하다고 외쳐본들 이와 관련한 정책·예산·조직·투자의 결정권을 쥔 사람들의 응답이 없거나 너무나 더디다. 왜 그럴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이들의 대다수가 지방 문제의 심각성에 관해 피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울’에 살면서 ‘한국’을 지배하거나 지배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이들의 대다수가 지방 위기의 실상이나 핵심에 관해 정말로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고 느낄 때가 많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인구가 마르고, 일자리가 줄고, 문화 활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면 결국 그것이 덫이 돼 한국 사회 전체가 위험해질 것이라는 논리 구조로 그들에게 이야기하면 돌아오는 답변은 대체로 “그것은 그 지역의 문제” “그것이 지방의 한계”라는 인식을 넘어서지 않는다.

문화적 차원에서 이처럼 퇴행적인 현실을 보여주는 현상이 있다. 서울권에서 제작돼 전국(지방)으로 발신되는 드라마, 코미디, 뉴스, 콘텐츠에서 ‘지방’이라는 말이 ‘질이나 급이 낮은 그 무엇’을 뜻하는 ‘접두사’로 지위를 굳혀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젠 스스럼조차도 없다. ‘지방 발령’ ‘지방 공연’ ‘지방 대학’은 곧장 한 급 낮은 비주류를 직접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조선 시대에도 이러지는 않았을 것 같다.

여기가 나심 탈레브의 ‘스킨 인 더 게임’을 떠올린 대목이다. 그는 자기의 핵심 이익을 걸고 직접 참여해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정책을 펴야 한다고 했다. 서울에 살면서 한국의 지방분권에 관해 결정하는 사람은 과연 지방분권에 자기의 핵심 이익을 걸거나 책임을 지는 걸까? 이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본다. 네이버가 지방 뉴스를 홀대하는 것은 홀대가 아니라 아예 지방이 안 보여서 그런 것 아니겠나. 안 보이니 책임질 일도 없는 것이다.

다시 나심 탈레브를 참조해본다. 그는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시장 참여자가 아니라 시장 구조다”라고도 했다. 금융과 관련해 이 말을 한 것이겠지만, 우리의 지방분권이 처한 상황에 비유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시장의 구조(한국의 기형적인 중앙 집중)가 심각하게 어그러져 있는데, 시장 참여자(국민)에게 ‘노오력’을 강조한다고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지금껏 ’지방’에서는 사리를 잘 따져 ‘중앙’을 설득하면 지방분권 문제는 잘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이 한국 전체를 살리는 중요한 대안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은 설득으로 풀 수 있는 문제일까? 과감하게 비가역적으로 지역균형발전을 추진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난다.

편집부국장 겸 인문연구소장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