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경남 거창과 주변 지역에서 일어났던 양민학살사건의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배상 법안 제정이 재추진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의원 11명은 최근 ‘거창사건 및 산청·함양사건 관련자 배상 등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관련자 및 유족에 배상금·의료 지원금·생활지원금 지급, 추모사업 지원 등이 주요 내용이다. 1951년 2월 사건 발생 이후 70년이 다 되도록 희생자에 대한 실질적 배상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법안 제정 움직임은 큰 의미가 있다.

이 사건은 전쟁 도중 내통했다는 이유로 국군이 양민을 학살하면서 벌어졌다. 2월 9일부터 사흘간 거창군 신원면에서 주민 719명이 목숨을 잃었고 산청군 금서면·함양군 유림면에서도 각각 395명, 310명이 희생됐다. 민주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진실규명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으나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어서 정치권이나 정부가 선뜻 이를 수용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1996년에야 만들어졌다. 그러나 정작 피해배상 근거는 담겨있지 않아 반쪽 법률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2004년에 국회가 국가의 보상책임을 규정하는 특별법을 의결했으나 이마저도 정부의 거부권 행사로 자동 폐기됐다. 이후 15년 만에 여야 의원의 노력으로 배상 관련 법안이 다시 마련됐으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번 특별법 추진 과정에서는 세부 항목을 두고 그동안 갈등을 빚었던 거창, 산청·함양 유족회가 한데 힘을 모았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유엔은 2006년 내놓은 ‘피해자 권리장전’에서 과거사에 대한 피해구조 조치를 국가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권은 ‘통비분자’로 몰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주민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관련 법 제정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과거의 상처를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유족에 대한 보상마저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