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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국제칼럼] 한국 영화 100년, 너무 조용한 부산 /강필희

‘나운규’에서 ‘칸’ 수상까지 부산과 이어진 영화 1세기

상상력과 기획력 한계인가, 관도 민도 무심히 흘려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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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극장에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개봉했던 ‘바톤 핑크’나 ‘펄프 픽션’ 같은 영화를 본 세대에게 칸은 닿을 수 없는 차원의 세계처럼 보였다. 해외여행이 쉽지 않던 시절 프랑스라는 나라 자체가 그랬고, 세계 3대 영화제 중에서도 콧대가 특히 높았던 칸이라 더했다. 간간이 한국 영화의 초청 소식은 들렸지만 수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랬던 칸이 우리 곁에 바짝 다가온 건 2000년대 들어서다. 임권택(2002년)을 시작으로 박찬욱 전도연 이창동 김기덕의 이름이 수상자로 연이어 호명됐다. 티에리 프레모 칸 집행위원장의 부임이 그 즈음이다. 프레모 위원장은 2001년 부임 첫해부터 거의 매년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았다. 그는 김동호 전 BIFF 집행위원장과 결성한 다국적 술모임 ‘타이거 클럽’의 종신멤버이자 술 취하면 떼창하는 이 클럽의 리드싱어다. 김 위원장 퇴임 때도 한걸음에 달려와 해운대 포장마차에서, 선술집에서, 노래방에서 BIFF의 앞날을 응원했다. 부산에서 프레모의 머리와 가슴에 ‘한국 영화’ 네 글자가 새겨진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칸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한국 영화 100년 최고의 선물”이라 했을 때 부산의 현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덧씌운 색깔론 때문에 BIFF는 예산이 칼질을 당했고 박근혜 정부에선 영화 ‘다이빙벨’ 사건으로 또 곤욕을 치렀다. “BIFF가 좌파 영화제라는 게 맞는 말입니까.” 고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의 푸념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어도 상황은 쉬 개선되지 않고 있다. 기대를 받았던 오거돈 부산시장은 문화 예산을 일괄 삭감해 영화제 예산은 오히려 더 줄었다. 오 시장은 뜬금 없이 영화제 개최 장소를 북구로 옮기겠다는 계획을 밝혀 영화인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영화영상발전기금 1000억 원 조성 약속은 별다른 이행 소식이 없다. 부산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건립 추진 중인 국립영화박물관을 유치하려는 대열에 뛰어들었으나 경과는 아무도 모른다. 국가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는 10년 만에 부산 본사 신사옥 착공식을 하면서 웬일인지 주요 외빈 초청없이 얼렁뚱땅 치르고 넘어갔다. 한국 영화 100년을 기념하는 사업으로 그나마 해운대 영화의전당 주변에 ‘월드 시네마 스트리트’가 조성되고 있는 정도다.

“올해는 한국 영화뿐 아니라 부산의 영화사를 정리하기도 좋은 기회입니다. 부산이 한국 영화사에서 분명히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데 부산시는 물론이고 지역에 있는 영화 관련 단체들도 조용하네요.” 동의대학교 영화학과 김이석 교수는 부산이 보여주는 상상력과 기획력의 한계가 몹시 아쉽다는 듯 말했다.

역사에도 지식재산권이 있다면 영화에 관한 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하게 이를 주장할 수 있는 곳이 부산이다. 일본에서 최초로 영화가 상영된 해가 1896년인데, 불과 7년 뒤인 1903년 부산에 ‘행좌’라는 상설극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고인이 된 홍영철 한국영화자료연구원장이 밝혀냈다. 지금 중구 남포동 할매집회국수 근처다. 한국 최초의 영화 상영이 이곳 행좌에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영화인도 있다. 1924년엔 우리나라 최초로 주식회사 형태의 영화제작사인 조선키네마가 부산에서 설립됐다. 현재 중구청 옆 한성각이라는 중국식당 자리이다. 일본 자본이었지만 감독과 배우는 모두 한국인이었다. 영화 ‘아리랑’을 만든 춘사 나운규도 이 회사가 만든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해의 비곡’ ‘운영전’ 같은 영화다. 함북 회령이 고향인 그가 서울 충무로가 아닌 부산에서 영화 커리어를 시작했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가.

서울 단성사에서 ‘의리적 구토’가 상영된 1919년 10월 27일을 기념해 영화의날이 제정됐지만 초창기 한국 영화가 배태되고 태동된 곳은 부산이다. 부산에서 영화평론가 모임이 처음 만들어졌고, 부산국제단편영화제는 현존하는 한국의 단편영화제 중 가장 역사가 길다. 영화의 제작, 감상, 비평이 모두 부산에서 자생적으로 시작됐다.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 영화라는 브랜드 속에 부산이라는 도시가 가진 함의가 이처럼 뚜렷하다. 그런 곳에서 영화 100년의 연고권을 내세우는 시 차원의 행사조차 없다.

영화 ‘기생충’이 개봉 일주일도 안 돼 관객 45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지난 토요일 부산의 영화 1번지 남포동 극장가는 영화팬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출출한 속을 달래려는 듯 식당가를 기웃거리며 사람들은 뒷골목 바닥에 깔린 ‘행좌’ 표지판을 무심히 밟고 간다. 100년 전 식민지 청년 나운규가 고뇌하며 걷던 그 길이다. 부산의 영화 100년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히 지나가고 있다.

논설위원 flut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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