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으로 가는 길목은 때론 애틋하다. ‘물망초(勿忘草·Forget-me-not)’와 함께하는 초여름은 특히 그러하다. 가녀린 초록 줄기 끝에 돋아난 연보라빛 작은 꽃. 물망초는 자신의 자태처럼 얽힌 전설 또한 가련해서다. 옛날 젊은 연인이 다뉴브 강가를 거닐다 건너편에 핀 연보라빛 꽃을 발견했다. 그 꽃을 갖고 싶어하는 여자를 위해 남자는 용감하게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꽃을 꺾어 움켜쥐고 돌아오다 기진해 그만 세찬 물살에 휩쓸리고 말았다. 죽어가는 남자가 마지막으로 외쳤다. “날 잊지 말아요!”
다뉴브강의 전설은 정선아리랑의 전설과 많이 닮았다. 강원도 정선군 북면 한강 상류의 나루터인 아우라지에도 강을 사이에 두고 사랑했던 청춘남녀가 있었다. 그들은 동백을 따러 간다는 핑계로 만나기로 했으나, 큰 홍수가 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사시사철 임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아우라지 뱃사공은 그들의 못다한 사랑을 애절하게 노래했다.
두 전설의 정서적 유사성은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이 1926년 8월 녹음한 ‘사의 찬미’에서도 확인된다. 이 노래는 루마니아의 작곡가 이오시프 이바노비치의 왈츠곡 ‘다뉴브강의 잔물결’에 그녀가 직접 가사를 붙여 만든 것이다.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너의 가는 곳 그 어데냐/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A단조의 원곡 선율도 애잔한데, 윤심덕이 원곡보다 느리게 부르면서 더욱 처연해졌다. 다뉴브강의 잔물결은 끊어질 듯 이어가며 길게 늘여 부르는 정선아리랑의 유장한 가락과 한몸처럼 겹쳐진다. 두 전설과 음악이 윤심덕의 마음과 목소리에서 어우러져 동·서양의 보편적 비감(悲感)으로 승화된 셈이다.
두 나라의 슬픈 인연은 아직 다하지 않은 것일까. 무정한 다뉴브강이 모질게도 한국인 관광객들을 삼켜버렸다. 지난 3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시민들이 숨진 한국인들의 넋을 달래고자 강가에서 합창한 아리랑은 다시금 그 인연을 떠올리게 했다. “전통 노래가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 아리랑을 부르게 됐다”는 한 시민의 설명에서도 인연의 흔적이 느껴졌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시민들이 던진 꽃들로 인해 강에는 꽃비가 내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만난 두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한 많은 아리랑고개를 넘어갔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