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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화의 미술여행] 고흐보다 더 아파보였던 의사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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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6-04 19:03:21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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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6월, 고흐가 죽기 6주 전 그린 이 그림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 중 하나다. 그림 속 모델은 고흐를 마지막까지 돌봐줬던 정신과 의사이자 친구였던 폴 가셰다. 붉은 탁자 앞에 앉은 의사는 오른손으로 얼굴을 괴고 왼손은 탁자 위에 놓인 허브 식물을 살짝 덮고 있다. 표정은 무척 우울해 보이고, 얼굴과 머리는 전체적으로 노랗게 처리되어 있어 배경의 푸른색과 강한 대조를 이룬다. 그런데 고흐는 자신이 형제처럼 믿고 의지했던 고마운 의사를 왜 이렇게 우울한 표정으로 그린 걸까? 

   
빈센트 반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1890년).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가셰 박사 초상을 우울한 모습으로 보이게 끝냈어. 누가 보면 인상 쓰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야… 슬프지만 점잖고, 아직은 명석하고 지적이게. 얼마나 많은 초상화가 이렇게 되어야 했었는지… 거기엔 현대의 정점이 있어. 오랫동안 지켜봐 왔던, 아마도 백 년 후에도 고대하며 돌아보게 될….” 

그랬다. 고흐는 무표정하고 인위적인 딱딱한 전통 초상화와 달리 슬픈 감정과 표정을 지닌 진짜 사람의 초상화를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야 백 년 후에도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현대적인 그림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혁신이고 새로운 예술이라 확신했던 것이다. 자신의 예술을 이해해줬던 친구에 대한 고마움은 그림 속 디기탈리스로 표현했다. 심장 통증을 치료하는 강심제로 쓰이던 이 약초는 자신을 돌봐주고 치료해준 가셰의 직업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고흐는 가셰 박사가 처음부터 마음에 든 건 아니었다. 정신병 치료를 위해 동생 테오의 권유로 박사를 처음 만난 후 고흐는 테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가셰 박사한테 기대하면 절대 안 될 것 같아. 내 생각에 그 사람은 나보다 더 아파 보였어… 장님이 장님을 이끌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니?” 정신과 의사였지만 가셰도 부인과 사별한 후 우울증을 겪은 경험이 있긴 했다. 예민한 고흐가 정신과 의사의 심리상태까지 꿰뚫었던 건지, 가셰가 고흐의 마음을 열려고 자신의 아픈 과거를 먼저 얘기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며칠 후 두 사람은 ‘절친’이 된다. 고흐는 여동생 빌헬미나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형제 같은 진정한 친구를 찾았어. 바로 가셰 박사야. 우린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서로 너무 닮았어”라고 썼다.

   
가셰 박사 역시 아마추어 화가였기에 고흐의 그림에 대한 열정을 누구보다 높이 사고 용기를 북돋아 줬다. 정신과 의사로서 그림 그리기가 고흐의 건강 회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림 그리기를 만류했던 다른 정신과 의사들과 달랐기에, 고흐 입장에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가셰의 응원에 힘입어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그림에 매달렸던 고흐는 죽기 마지막 70여 일 동안 무려 80점 이상의 작품을 완성했다. 하지만 그림도 의사도 그의 자살을 막지는 못했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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