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에 패러데이가 전자기 원리를 발견한 이후 전기는 동력, 운송, 냉난방, 통신, 오디오, 컴퓨터, 스마트폰 등 거의 모든 문명의 이기에 이용된다. 전기는 물흐름과 비슷한 전자의 흐름이다. 발전소에서 만든 전자 흐름을 전선을 통해 각 가정까지 순식간에 전달하는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다. 1947년 미국 벨연구소의 쇼클리 등이 원자들 사이에 전자가 부족한 반도체와 전자가 과잉인 반도체를 서로 접합하여 수도꼭지가 물 흐름을 조절하는 것과 비슷하게 전자 흐름을 조절하는 트랜지스터 소자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트랜지스터들을 연결한 회로만 적절하게 구성하면 다양한 논리회로와 알고리즘을 구현할 수 있다. 바로 반도체 칩이다. 연산장치와 메모리를 만들어 컴퓨터, 디지털 신호처리, 통신이 가능해진다.

반도체 덕분에 음악, 사진 및 카메라, 비디오, 방송, 통신 등이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로 전환됐다. 디지털 신호는 바로 데이터이다. 데이터는 알고리즘으로 조정, 변형, 처리할 수 있다. 쉬운 예로 디지털카메라나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원하는 대로 후보정이 가능하다. 온라인 쇼핑몰, 차량·주택공유 등의 각종 신개념 인터넷, 모바일 비즈니스가 탄생하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전통산업은 사라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도 이러한 디지털 변혁이 그 핵심이다. 디지털 혁신, 4차 산업혁명을 지탱하는 것이 바로 반도체이다. 1984년 주변의 극심한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말한 ‘산업의 쌀’인 셈이다. 수십 년을 내다본 탁월한 선견지명이다.

반도체 산업은 우리 수출의 20%를 차지하고 세계 1, 3위 업체가 우리나라 기업이다. 오늘날 반도체는 상상할 수 없는 혁신을 거듭했다. 새끼손가락 손톱보다 작은 칩에 수백억 개의 트랜지스터와 이들을 촘촘하게 연결하는 선들을 상상해보라. 반도체 업계는 회로선폭을 가늘게 하여 트랜지스터 집적도를 높이고 칩 크기를 줄여 웨이퍼 장당 칩 수를 늘려 원가 경쟁력을 높인다. 최근 7나노를 거쳐 5나노 선폭에 진입했다. 선폭을 줄이면 고속화, 저전력, 저발열, 소형화의 장점이 생겨 스마트폰 등의 휴대용 기기의 경쟁력을 높인다. 반면 제조공정이 어려워지고 불량 위험도 커졌지만 끝없는 혁신으로 해결해왔다. 초정밀 공정 장비, 자동화 물류 장비, 클린룸 비용이 급속히 증가해서 반도체 공장인 팹 건설에 15조 원이 든다. 특히 초미세 트랜지스터 회로패턴을 사진처럼 찍는 대당 2000억 원이나 하는 극자외선 스테퍼 장비가 수십 대 필요하다. 이러한 팹을 2년에 한 개씩 지어야 하니 투자 위험이 대단히 높다.

도심지역에 땅이 부족한데 인구가 밀집하니 결국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도로도 3차원으로 복잡하게 얽히게 된다. 마찬가지로 초소형 칩 위에 수백 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밀집되고 이들의 연결선이 늘어나니 고층빌딩처럼 3차원으로 쌓게 된다. 저장장치용 낸드 메모리는 96층에 이르며 층간 전자 이동을 위한 수직 연결통로가 수십억 개나 된다. 96층 고층빌딩에 엘리베이터를 수억 개나 만드는 격이다. 가히 신의 경지에 이른 현대판 연금술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우리나라가 독보적이다. 컴퓨터 중앙연산장치, 통신장비, 휴대전화, 자동차, 각종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비메모리, 주문형 반도체 등에서는 아직 우리나라가 열세이다. 이는 고난도 기능을 수행하는 알고리즘과 이를 회로로 구현하는 회로설계가 핵심이다. 수많은 특허와 첨단공학지식이 사용된다. 통신, 그래픽, 오디오, AI 등 응용 분야별 디지털 원천기술, 사업 역량, 전문설계 인력 등 공학기술의 총화이다. 인텔은 컴퓨터 중앙연산장치를 독보적으로 설계, 제조한다. 브로드컴, 퀄컴, 엔비디아 등의 세계적 팹리스 반도체 기업은 설계만 하고 제조는 파운드리라고 부르는 전문 제조 업체에 맡긴다. 파운드리는 대만의 TSMC가 독보적이다. 우리나라도 비메모리 사업을 키우겠다고 한다.의욕과 투자만 앞세우지 말고 꾸준히 디지털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많은 벤처 기업을 키워야 한다.

KAIST 산업 및 시스템 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