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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근대화와 우리나라 첫 경제학 교과서 /이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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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5-26 19:41:42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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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는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변곡점이 있다. 근세사에 가장 극적인 변곡점은 봉건사회에서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넘어가는 ‘근대화’일 것이다. 근대화가 개개인을 열심히 일하게 만들어 눈부신 경제발전을 가져왔고 권리를 신장시켰다.

우리나라는 조선 시대 말까지 사농공상이라 하여 상공인을 맨 아래 계급에 두고 천시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역사의 주역이 사대부 관료, 농민에서 개인, 상공인으로 바뀌는 근대화를 이루었다. 그런데 우리 근대화가 어느 시점에서 부터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고찰은 미흡하다.

1894년부터 조선은 노비제 폐지 등 일련의 혁을 실시했다. 그러나 3년 후 고종이 러시아공관으로 피신하면서 개혁은 크게 흔들렸다. 그럼에도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도입된 교육개혁은 이미 변화의 불씨가 되어 타오르고 있었다. 고종은 1895년 교육입국의 의지를 천명한 ‘교육조서’를 발표하고, 서구식 교육체제로 교사를 양성하는 한성사범학교령과 소학교령을 선포했다. 물론 전국에 1만여 개의 서당을 존속시킨 채 근대식 소학교 몇 개 세운 것이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의문도 있다. 그러나 과거제 폐지가 교육 변화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유교경전을 시험과목 삼은 공무원 임용제가 폐지되자 전통교육의 필요성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새로운 관학으로 한성사범학교와 소학교가 문을 열었다. 기독교 선교사들은 광혜원 배제학당 경신학교 이화학당 등을 잇따라 세웠고, 우리 지사들도 인재를 키우겠다며 한성의숙 흥화학교 양정의숙 보성학교 중동학교 등 사립학교를 속속 건립했다. 또한 1899년 중학교와 실업학교 학제가 제정되면서 관립 중학교, 경성의학교, 농상공학교 등도 세워졌다.

한편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은 광무개혁의 일환으로 토지 소유권 확립을 위한 토지조사사업과 상공업 진흥 정책을 추진했다. 토지 소유자에게 소유권을 인정하는 증서가 발급되고, 한성은행 등 주식회사도 등장했다. 이제 학교에서 ‘경제’를 가르칠 필요가 생겨났다. 때마침 일본에 갔던 최초의 관비유학생들이 학업을 마치고 귀국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자본주의 자유경제 이론을 설명하는 우리말로 쓴 최초의 근대 경제학 교과서들이 등장했다. 1907년에서 1910년 사이에 유치형 강술, 신해영 교열의 ‘경제학’, 원응상 신해영의 ‘경제학’, 이필선 역의 ‘보통경제학’, 학부편찬의 ‘경제통론’, 김우균 역의 ‘경제원론’ , 유승겸의 ‘최신경제학교과서’ 등이 출간되었다. 이들 중 유치형 원응상 신해상 유승겸은 첫 관비유학생 출신이었다.

이들 경제 교과서는 일본 학계의 영향을 받았다. 1860년대 처음 서구 경제학을 도입한 일본에는 당시 세 가지 경제학 흐름이 있었다. 영국의 자유주의 경제학과 독일의 신역사학파 경제학, 그리고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경제학이었다. 이들이 경제발전 원리로써 공산주의와는 분명한 선을 긋고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영국의 자유주의 경제학과 독일 신역사학파 경제학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했다.

우리말 경제학 교과서의 등장은 우리 사회가 이익 추구를 소인배 짓으로 보던 전통사회에서 부를 중시하는 자본주의 사회로 넘어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1908년 보성전문학교 법률학전문과 1회 졸업생인 박승희와 주정균이 스승 유승겸의 경제학 강의를 듣고 ‘최신경제학’을 펴냈다. 교열을 맡은 유승겸은 서문에 이렇게 썼다. ‘부를 이루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경제이론을 분명하게 해석함이 가할진데…’라며 ‘치부(致富)’의 학문으로 경제학을 익히라고 했다.

구한말 우리말로 된 경제학 교과서가 출간되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라는 발전의 원리를 대중들에게 알린 것이다. 단지 이들 교과서가 나오자마자 일제통치가 시작된 것은 역사의 비극이다. 근대화는 시대의 발전 동력을 찾는 작업이었으며, 발전 동력을 찾는 일은 지금도 필요하다. 우리가 역사를 발굴하고 되돌아보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세대 객원교수·동서문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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