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생활 8년 차, 아내가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일, 집 앞마당에 짓는 사랑채(손님방)에 구들장을 놓는 날이었다. 아내는 본채에 화목보일러가 있지만, 겨울에 운치 있고 따뜻한 전통 구들장이 있는 사랑채에서 지내고 싶어 했다. 그러던 차에 알음알음 이 방면의 전문가를 알게 되어 이번에 큰맘을 먹었다. 며칠 전 기초공사가 마무리되어 일요일 오전 8시에 인근의 고수들이 모였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아침부터 내리는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할 수 없이 집 앞 베란다에서 그들과 따뜻한 차를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비가 그치기만 기다렸다.
그들을 소개하자면, 12살 때부터 산에 들어가 생태적으로 살다 하산하여 현재 이곳에서 구들장 전문업체를 운영하는 A 선생, 도시에서 은행원 생활을 접고 이곳으로 들어와 농민회 활동과 진보연합 대표로 열심히 살아가는 B 선생, 명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하였으나 실패하자 과감하게 접고 이곳으로 들어와 농사를 짓는 C 선생, 전교조 활동 이후 산골에서 고고하게 살아가는 D 선생, 젊은 나이에 시골로 들어와 참된 귀농을 준비하는 E 군 등 각자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모두 구들장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 사람들은 인건비를 받지 않는 대신 돌아가면서 구들장이 필요한 집에 품앗이한다는 사실이었다. 현지인들조차 두레 혹은 품앗이가 사라진 상황에서, 오히려 들어온 사람들이 우리 전통적인 규범을 몸소 실천한다는 것에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그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비는 그치지 않았고, 우리의 대화는 농사부터 자녀 교육까지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구들장 장인 A 선생은 건축 외에 천문지리, 풍수, 농사, 약초, 벌 치는 방법 등 해박한 지식으로 사람들을 압도했고 나머지는 그의 강연을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마침 주일 예배 참석을 위해 집을 나서는 우리 집 막내딸(중3)을 보자 화제는 시골에서의 자녀 교육으로 돌아섰다. 참석자 중 한 명이 딸은 공부를 잘하느냐, 하고 묻기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시골에 왔으면 신나게 놀아라, 하는 지엄한 아빠의 명령을 곧이곧대로 믿고 공부는 뒷전, 여전히 잘 논다고 답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전교조 출신 D 선생은 한술 더 떠, 자기 아들은 고2 때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기에, 그러라고 했더니 정말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고, 사람들은 봄비를 바라보며 각자의 소탈한 행복을 꿈꾸고 있었다. 결국, 그날은 비 때문에 작업을 연기하고 말았지만, 나는 그들의 꾸밈 없는 표정에서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참된 삶을 보았다. 무엇보다 남자들끼리 술 없이, 따뜻한 차 한잔으로도 얼마든지 마음을 열어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마음에 와닿았다.
작년에 이어 운 좋게 올해도 나는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입주작가로 선정되었다. 누구의 방해 없이 오롯이 창작활동에만 힘쓸 수 있다는 것은 모든 글 쓰는 사람들의 로망이어서, 나는 아주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나 역시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라 때때로 외로움의 덫에 걸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전화 한 통 없는 아내와 지인들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때론 내가 왜 산청 합천 등지 시골을 전전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책도 한다. 그러니 아무리 시골에서 살더라도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틈틈이 소통과 공감을 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일례로 나와 비슷하게 이웃 마을로 들어온 남자가 있었는데 소개하자면 이렇다. 나와 비슷한 또래인 그는 지역의 좋은 대학을 나오고 어떤 사업체의 대표까지 지낸 부유한 사람이었으나 얼마 전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술병에 걸려 마을을 떠났다. 그와 나, 둘 다 술을 즐기고 때때로 폭음도 불사하지만, 우리 둘은 몇 가지 차이가 있다. 그건 그는 부자여서 시골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었고, 가족과 떨어져 있으며, 사람들과 일절 교류가 없었다. 반면, 나는 가난하여 글이라도 써야 먹고살 수 있고, 술 때문에 핍박과 위력을 행사하는 아내라도 있으며, 힘들고 외로울 때 가끔 만나는 지역 문인이 몇 있다. 앞으로 귀농, 귀촌을 꿈꾸는 분들, 특히 혼자 오려는 주당은 제발 이 상황을 참고하기 바란다. 아니면 말고….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