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우리나라의 직장 내 술 문화와 관련한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이 신문은 일주일 동안 한국인은 평균적으로 소주 13.7잔을 마신다고 적은 뒤 서울을 ‘세계에서 가장 술을 많이 들이켜는 도시’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이어 가디언은 회식이 잦은 한국의 직장 문화가 음주량 증가의 원인이라는 분석을 달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외국 매체가 우리나라 음주 문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것이 솔직히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이뤄지는 직장 회식이 아직도 빈번한 것이 우리 현실이다 보니 대놓고 손가락질을 하기가 좀 쑥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1차만 한 곳에서 밤 9시까지 하자’는 의미의 ‘119 원칙’이 최근 국내 대기업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현상은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반영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일과 후 술자리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업무 중 서로 간에 쌓인 오해를 풀기에는 이만한 것이 없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딱딱한 분위기인 사무실을 떠나 술 한잔을 주고받으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전에 가졌던 앙금이 풀어질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말싸움이 심해지는 바람에 사이가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감정의 골만 깊어질 가능성도 있으니 성과를 낙관하기는 어렵다.
일반 사회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이런 형식의 모임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만 해도 2017년 7월 삼성과 현대차 등 국내 15개 그룹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호프 회동’을 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기계에서 직접 생맥주를 뽑는 등의 파격적인 행동을 하며 대화의 장을 편안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지난 20일 저녁에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여야 3당 원내대표가 모임을 가졌다. 장소로는 근사하고 은밀한 곳 대신 서울의 한 맥줏집이 선택됐다. 꼬인 실타래 같은 정국을 술 한잔 마시면서 풀어보자는 의도에서였다. 국회 정상화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해답이 나오지 않았으나 술자리 분위기만은 아주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일부 호사가는 3당 원내대표의 호프 회동이 보여주기식 만남에 그쳤다는 지적도 한다. 그렇지만 뭔가를 해보려고 노력하는 모습 만큼은 일부러 깎아내릴 필요가 없을 듯하다. 정치도 사람이 하는 것인지라 한 번 만남으로 모든 게 술술 풀릴 리 있겠는가.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