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이 하지 마라.” 온실 같은 학교생활을 마치고 정글 같은 사회생활을 처음 할 즈음. 직장을 여러 번 옮겨 다닌 전력이 있는 학교 선배가 했던 충고다. 소주 한잔 걸치면 말이 많아지는 버릇 때문에 신입사원 시절 고생을 좀 많이 했던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었다. 말을 많이 하면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니까 아예 말문을 닫는 게 나을 수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일리가 있는 말로 여겨졌다. 문제는 실천이다. 행동으로 옮기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말과 관련된 경구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겠나.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 ‘창조주가 사람의 귀를 두 개 만드는 대신 입은 하나만 만든 이유를 생각해 보라’ ‘내 입안의 세 치 혓바닥이 몸을 베는 칼이다’ ‘셔츠는 다리 사이에 단단히 여미고, 혀는 이 사이에 단단히 여며라’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 등등. 대략 떠올려 봐도 이 정도로 많다. 그런데도 실수는 반복되고 반복되니, 말의 해악에 대한 경고도 그만큼 늘어난다. 동서와 고금이 따로 없다.
여기에 일본 정치권은 ‘입조심 매뉴얼’이라는 걸 하나 덧붙였다.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은 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소속 정치인과 출마 예정자를 대상으로 입단속을 위해 매뉴얼을 만들었다고 한다. 불필요한 구설로 선거에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방지하겠다는 의도다. 그런데 한심하다는 생각에 앞서 내용을 새삼 되새겨봤다. 아직 그 선배의 경고를 실천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부족함이 작용했을 터이다.
그중 ‘말은 짧게, 갈채에 흥분 말라’라는 경고는 인상 깊었다. 또 ‘발언내용 전체가 보도되는 일은 없다. 자신의 발언이 언제든 편집·발췌될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하라’ ‘쉼표를 계속 찍으며 늘어지듯 발언하면 편집될 위험이 커진다’ ‘타이틀(제목)로 뽑히기 쉬운 강한 표현을 주의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나 피해자들을 언급할 때는 더 한층 배려하라’ 등은 말로 먹고사는 정치인이라면 한 번쯤 새겨둘 만해 보였다. 언론을 상대할 때 유용하게 써 먹을 수 있는 기술적인 표현으로 여겨졌다. 정치의 생리는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비슷하니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것까지 매뉴얼로 만드는 일본이란 나라가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걸 매뉴얼로 만들어 익히는 일본이 좀 답답하면서도 철저해 보였기 때문이다. 지진처럼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천재지변에 대비하는 자세가 몸에 배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