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세상읽기] 존경 받는 부자 /강명관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5-15 19:55:32
  •  |  본지 30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이희평(李羲平)이란 사람이 엮은 ‘계서야담(溪西野談)’이란 책에 실린 옛날이야기 한 토막.

최생(崔生)이란 양반이 있었다. 대대로 벼슬하는 집안 출신이라 그 역시 과거에 응시했지만 낙방의 연속이었다. 점차 가세가 기울었고 부모의 봉양도 쉽지 않았다. 예전에 자기 집안의 은덕을 입은 사람들의 발걸음도 잦아들었다. 최생은 자신을 돌아보았다. “부모 봉양조차 못 하는 내가 무슨 과거란 말인가?” 그동안 지어놓았던 글을 깨끗이 태우고 읽던 책은 모두 친구에게 주었다.

집을 팔아 돈 500냥을 마련해 부모와 처자를 이끌고 청주 고향으로 갔다. 고향에는 논 10결(結)과 노비 10명, 소 3마리가 남아 있었다. 최생은 노비를 불러 모은 뒤 농사에 힘써 10년 뒤에는 큰 부자가 되고 말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면 10년 뒤 각자에게 돈 100냥을 상으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해는 풍년이었다. 최생은 집을 판 돈 500냥으로 곡식을 샀다. 이듬해 최생은 직접 삽을 들고 농사를 지휘하였다. 그해도 풍년이었다. 최생은 자기 소유의 논밭을 모두 팔아 3000냥을 마련해 헐값으로 곡식을 사들였다. 지난해 곡식과 합쳐보니 4000석이나 되었다. 그 이듬해 참혹한 흉년이 들었다. 사람들이 속절없이 죽어 나갔고, 쌀값은 10배로 치솟았다. 노비들은 쌀을 내다 팔자고 졸랐다. 10년이 아니라 불과 2년 만에 거부가 될 수 있는 기회였다.

최생은 그 말을 듣지 않고 가서 동네의 부로(父老)들을 불러오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찾아오자 사정이 어떤지 물었다. 남녀노소 모두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하소연하자, 최생은 우리 고장 사람들이 굶어 죽는 것을 볼 수 없다면서 곡식을 나눠줄 사람의 명단을 작성해 오라고 했다.

명단에 오른 사람은 500여 농가의 1300명이었다. 최생은 모든 농가에 식량과 종자를 대어주고는 걱정 말고 부지런히 농사를 지으라 하였다. 최생 자신도 남의 땅을 많이 빌려 그해 농사에 특별히 공을 들였다.

다행히 그해는 대풍년이었다. 500농가의 사람들은 빌린 곡식을 갚으려 하였다. 셈을 해 보니 최생이 푼 곡식 4000석은 지난해의 시가로 4만 냥이었다. 하지만 4만 냥은 너무 야박하다는 생각에 모두 의논 끝에 6만 냥을 갚기로 했다. 농민들은 돈을 가지고 최생의 집을 찾아갔다. 최생은 깜짝 놀라며 안 받겠다고 손사래를 치는 것이었다. 자신이 빌려준 곡식의 15배에 해당하는 돈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농민들의 말은 달랐다. 4000석 곡식을 4만 냥에 팔아 다시 온갖 물건을 사들였다가 팔았으면 12만 냥은 충분히 벌었을 것이니, 자신들은 그것의 절반만을 갚는 셈이라는 것이었다. 농민들은 안 받겠다는 최생을 설득했다. 최생의 곡식이 없었으면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으리라는 것, 거금을 벌 기회를 버리고 사람을 살린 것이 얼마나 큰 은혜냐는 것이 설득의 논리였다.

최생은 하는 수 없이 그 돈을 받았고 그 돈으로 곡식을 사고팔아 요령 있게 재산을 불렸다. 10년이 되었을 때 그는 노비들에게 100냥씩 상을 줄 수 있었다. 뒤에도 흉년이 들었지만 500여 농가는 늘 최생의 도움으로 어려운 시기를 무난히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최생의 부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그는 사람의 목숨을 살렸다. 대가를 바란 것이 아니었지만 농민들은 그에게 돈을 다시 벌 기회를 주었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흉년이 들 때마다 동네 사람들은 최생의 곡식에 의지하여 굶주림을 견뎌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부자의 재산은 부자 홀로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공유 재산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재산이 부자의 재산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그는 아마도 풍족한 삶을 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부에는 지역민을 살리는 공공성이 있었다. 존경받는 부자란 이런 경우다. 대한민국 부자들의 갑질과 도덕적 타락을 목도하는 이즈음 옛이야기의 존경 받는 부자를 새삼 떠올리게 된다. 어디 이런 부자는 없는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많이 본 뉴스RSS

  1. 1[펫 칼럼] 반려동물과 식용동물 이분법?…생명에 어찌 다름이 있을까
  2. 2[신간 돋보기] 고전 100권 읽히기, 그 효과는
  3. 3최인호·김세연·윤준호, 도시재생 정부사업 선정돼
  4. 4송도 해안도로 달리는 시내버스 결국 무산
  5. 5‘포수 FA’ 관심 없던 롯데, 이번 쇼핑목록엔 담나
  6. 6창원~김해 버스 광역환승할인 내달 시행
  7. 7부산 국회의원 해부 <하> 선거 공약 검증
  8. 8[서상균 그림창] 흐뭇…
  9. 9준비 덜 된 첫 민간 체육회장 선거…내년 대규모 공석 우려
  10. 10댕댕이 치료비 폭탄…펫보험·신용카드로 부담 던다
  1. 1‘DJ 아들’ 김홍걸 총선 출마 시사… 목포서 ‘DJ 비서실장’ 박지원과 맞붙나
  2. 2정점식 “정동병원서는 정경심 뇌종양 진단서 발급 안 했다고…”
  3. 3법사위 국감, ‘검사 블랙리스트’ 논란 한동훈 반부패부장도 출석
  4. 4장제원, 국정감사서 “좌파 광란의 선동 정점은 대통령” 文 저격
  5. 5문재인 대통령 국정지지도 45.5%… 조국 사퇴 이후 회복세
  6. 6금태섭, 윤석열에 ‘국회 출석’ 묻고, 한겨레 고소 지적
  7. 7군, 드론탐지레이더 부울경에 시범배치
  8. 8"언론재단 정부광고 대행 수수료 인하 혹은 폐지해야"
  9. 9최인호·김세연·윤준호, 도시재생 정부사업 선정돼
  10. 10힘 받은 황교안, “이낙연 노영민 이해찬 나가라”
  1. 1 산업의 힘, 기계부품
  2. 2평균층수 제한해 스카이라인 보장…경관·공공성 높였다
  3. 31965년 옷 다시 입은 ‘대선소주’
  4. 4시민공원 주변 재개발 아파트, 층수 낮추고 동수 10개 늘린다
  5. 5부산 고액·상습체납자 404명…1인당 평균 7억
  6. 6주가지수- 2019년 10월 17일
  7. 7드론 택배 2025년 상용화…정부 “선제적 규제 혁파”
  8. 8“연구개발 집중 투자는 창업 때부터 가장 중시, 국내외 망라 협업 강화”
  9. 9“부산항 부두 직통관 물동량 검사 비율 1.7% 수준 그쳐”
  10. 10부산 제조업 하반기 고용 절벽…업체 73%가 “안 뽑겠다”
  1. 1“설리 동향보고서 유출, 한 직원이 SNS로 퍼트려…” 처벌은?
  2. 2제28회 경남도 의용소방대 소방기술경연대회 개최
  3. 3통근 버스 졸음운전에 7명 다쳐…경찰 “정확한 사고 원인 파악 중”
  4. 4로스쿨 10년 부산 변호사 2.4배 증가…급여 줄고 경쟁 심화
  5. 5'대도' 조세형 "아들에게 얼굴 들 수 없는 아비"…선처 호소
  6. 6'국정농단·경영비리' 롯데 신동빈 징역 2년6개월 집유 확정
  7. 7“뇌종양·뇌경색 진단서 발급한 적 없어” 정동병원, 정경심 추석 입원 병원
  8. 8조국 복직에 서울대 안팎서 '분노의 표창장' 등 패러디
  9. 9장용진 기자 “기자라면 누구나 상대 호감 사려…그런 취지로 한 말”
  10. 10개정 전 지방공무원 여비 지급 규정 두고 해석 분분
  1. 1손흥민 북한선수와 ‘유니폼 교환’ 질문에 “굳이…”
  2. 2‘포수 FA’ 관심 없던 롯데, 이번 쇼핑목록엔 담나
  3. 3류현진, 현역 투표 최고투수 후보 3인에 올라
  4. 4전쟁 같았던 평양 원정…손흥민 “안 다친 게 다행”
  5. 5베이브 루스 500홈런 방망이, 경매 최고가 경신할까
  6. 6
  7. 7
  8. 8
  9. 9
  10. 10
부산 국회의원 해부
의정활동 충실도
지방분권으로 도시 살린다
대학이 가져온 ‘부’- 독일 하이델베르크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감동스러운 도시건축을 만나고 싶다
진정한 탈일본을 결단할 때
기고 [전체보기]
부산시 국립특수학교 부지 허가를 /김석주
대마도 슬기로운 활용법 없을까 /최용오
기자수첩 [전체보기]
문화 축제로 진화하는 BIFF /김민정
시커먼 흙, 시커먼 기억 /배지열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귀농 귀어 귀촌에도 균형발전 없는 나라
달에는 토끼가, 지구에는 청룡이 산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힐링의 악기 ‘깡깡이’ 해금
조선 시대 선비들의 음악문화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억울함’에 귀 기울이는 자세 /이병욱
균형발전으로 성장엔진 불붙여야 /조민희
도청도설 [전체보기]
공적 된 멧돼지
반전의 태화강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가을과 다섯 수레의 책
조선시대 ‘북캉스’ 풍경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전남 영암 독천리의 ‘갈낙탕’
짜장면과 라면 그리고 염치
사설 [전체보기]
다시 태어난 부마항쟁, 진상 규명 등 남은 숙제 많다
한·아세안 회의 코앞인데 군 공항 의전실 누더기라니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소산소사’의 사회, 고용연장이 해법
중앙정부와 지자체 복지 역할 재정립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절망 속에서 탄생한 명작
패배한 청년의 초상
이홍 칼럼 [전체보기]
정신 줄 놓지 말고 다시 도전하자
감정적 대응은 일본을 웃게 만든다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부산 공공기관 혁신 이번엔 제대로 될까
서울 인구 1000만 붕괴의 명암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가을을 여는 모차르트
가을의 문턱에서…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과 삶
양해 바라지 말고 용서 구하자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호생관 최북의 ‘지두해도(指頭蟹圖)’
연객 허필의 ‘묘길상도’
  • 동남권 관문공항 유치기원 시민음악회
  • 골든블루배 골프대회
  • 기장캠핑페스티벌
  • 제21회부산마라톤대회
  • 사하관관사진공모전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