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하기 가장 힘든 상대가 누구인가요?” 필자가 기업에서 협상강의를 할 때 종종 던지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절반 이상은 주저없이 배우자를 꼽는다. 그렇다면 다른 협상 상대방에 비해 유독 배우자와 벌이는 협상이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모든 정보가 노출되어 있다.
“뭘 제대로 알고 이야기해야지, 가정 생활에 대해서 어떻게 남보다 더 모를 수가 있어?” 협상에서 정보력은 승패와 직결된다. 상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많이 확보한 쪽이 유리한 고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전에 상대 정보를 최대한 확보하고, 자신 정보는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남편들은 아내와의 협상에서 대부분 정보력에서 밀린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더라도 별로 설득력이 없다. 적당히 숨기면서 빠져나가기조차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자와의 협상은 항상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다.
둘째, 단기적인 관계가 아니다.
“아니, 그 이야기는 왜 또 꺼내는 거야? 그게 대체 언제 이야기인데?” 수년간 쌓인 해묵은 감정들은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불거져 나온다. 오늘 저녁 부부싸움에 8년 전 어느 날 이야기가 등장한다. 배우자는 왜 관련도 없는 그 이야기가 지금 이 상황에서 언급되냐고 펄쩍 뛴다. 그러면 상대방은 이게 왜 관련이 없냐고, 아직도 모르겠냐고 더 화를 낸다. 관계가 장기적인지 단기적인지는 협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부부간 관계는 단기적인 관계가 아니다. 장기간 지속되는 관계는 과거의 감정과 경험과 선입견들이 현재의 소통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셋째, 수많은 이해관계인이 얽혀 있다.
“어머님이 이번 추석 때는 하루 더 있다 가래. 나도 우리 엄마아빠 보고 싶은데….” 결혼과 연애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해관계인의 존재에 있다. 특히 아내는 시부모님들과의 관계를 힘들어 하고, 남편도 장인장모님과의 관계가 편하지만은 않다. 이뿐이랴. 형제자매들도 영향을 미치고 자식들도 부부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아이가 생긴 이후 부부싸움의 단골 주제는 아이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직장상사와 동료들도 부부관계에 알게모르게 영향을 주고 있다. 이렇게 이해관계인이 많아질수록 변수는 늘어나고 부부관계는 복잡해지고 협상은 힘들어진다.
넷째, 원칙 없는 대화로 상처만 주는 관계이다.
부부간 대화에서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어떤 부분에서 아파하는지, 어떤 것이 상처가 되는지 알고 오히려 이 부분을 의도적으로 언급해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대화는 겉돌고, 아무말 대잔치가 난무하고, 언성이 높아지는가 하면, 해서는 안 될 말과 욕설까지 내뱉게 된다. 부부간 대화에도 원칙이 필요하다. 해당 쟁점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 상대방이 통제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비난하지 않기, 어떤 경우에도 욕설을 하지 않기, 언성을 높이지 않기 등 사소하지만 대화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정해두기를 권한다.
다섯째, 대안을 확보할 수 없는 관계이다.
배우자가 다른 협상 상대방과는 다른 가장 결정적 특징은 협상결렬 시 대안을 확보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통상은 결렬 시 대안을 확보한 뒤 협상에 임한다. 그래야 밀리지 않는 협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배우자와의 관계는 협상이 결렬되더라도 대안을 확보할 수 없다. 최악의 경우라도 결국 내일 또 집에서 다시 얼굴을 보고 같이 살아야 하는 관계인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이유들 때문에 배우자와의 협상이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관점을 바꾼다면 오히려 장기적으로 만족스러운 관계를 형성해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서로에 대해 충분히 겪어볼 수 있는 시간이 있고, 서로의 성향과 요구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이를 활용해 적합한 대화의 원칙을 정해서 이해관계인들과 조화롭게 생활해 나간다면, 오히려 복잡한 협상을 하지 않고도 서로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지속적인 윈-윈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가정의 달을 맞아 여러분의 가정에도 건승을 빈다.
법무법인 율본 비즈니스협상전략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