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과학이 아닌 예술이다’. 20년 전 미국 메이저리그 전문가의 저서 ‘야구란 무엇인가’에 나온 표현이다. 과학은 불확실한 인간 요소가 끼어들 필요가 없지만, 야구에는 예술과 마찬가지로 직관과 의지가 덧붙여진다는 뜻에서다. 그중 타격은 날아오는 ㄷ공을 때리고 싶은 욕망, 피하고 싶은 인간 본능이 결합된 행위라고 봤다. 이를 이용하는 게 투수의 기술인데, 커브나 직구를 적절히 섞어 타자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좋은 타격을 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얘기다.
국내에서 ‘자율야구’로 이름났던 이광환 전 LG 감독도 야구를 예술로 묘사했다. 창의로 빚어내는 육체 예술이라는 것이다. 즉, 모든 예술에서 창의력이 생명이듯 야구도 타율(他律) 속에서는 창의력이 나올 수 없다고 그는 강조한다. 꼭 그런 건 아니라 해도 ‘아트 사커(예술 축구)’처럼 충분히 공감되는 말이다.
메이저리그 140년 역사에서 걸출한 투수가 많이 배출됐지만, 1990년대에는 그레그 매덕스(애틀랜타)가 단연 최고였다. 사상 최초의 4년 연속 ‘사이영상’ 수상, 17년 연속 15승 이상 달성, 18차례의 ‘골드글러브’ 획득 등 숱한 기록이 증거다. 구석구석 절묘하게 찌르는 그의 송곳 제구력과 체인지업은 ‘예술구’로도 불렸다. 직구처럼 날아오다가 타석 앞에서 브레이크가 걸리는 공에 강타자들도 헛방망이를 돌리기 일쑤였다.
요즘 류현진(LA 다저스)의 눈부신 피칭으로 매덕스 이름이 다시 회자된다. 현재까지 시즌 5승, 24이닝 연속 무실점, 평균자책점 1.72 등에서 보듯 최고의 활약을 펼치는 류현진이 매덕스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 현지 언론도 그에게 ‘매덕스의 재림’ ‘컨트롤의 마법사’라는 극찬을 쏟아냈고, 그의 투구가 ‘예술의 경지’라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류현진은 인터뷰에서 자신을 매덕스와 견주는 건 과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매덕스 같은 대선수와 비교대상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매덕스의 이름에) 조금 걸맞게 쫓아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하겠다”는 의지 섞인 소감을 나타냈다.
어제 미국의 한 유명 칼럼니스트는 류현진의 호투 비결로 ‘기능성 운동신경’을 꼽았다. 부드러운 투구폼으로 비슷한 구위의 공을 100개 넘게 꾸준히 던진다는 점에서다. 이런 기세라면 그가 밝혔던 시즌 20승 목표도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관건은 역시 부상 방지다. 매덕스는 11년 연속 200이닝 이상 마운드에 서는 동안 부상자 명단에 오른 적이 없었다. 그만큼 몸 관리가 철저했을 터다. 류현진이 배우고 새겨야 할 점이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