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문재인 대통령 취임식이 있던 날, 한 종편채널에 정치패널로 참석해 중계방송에 임했다. 솔직히 시작 전만 해도 취임사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있었다. 전임 대통령 탄핵으로 실시된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지 불과 10시간 만에 마련된 취임식. 각계 전문가와 문필가로 구성된 ‘취임사준비위원회’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처지였다. 사실 그렇게 만들어져 나온 역대 대통령 취임사도 마음에 와닿지 않았던 것은 마찬가지.
그러나 연설 시작 불과 몇 분 만에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이 대목부터였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시청자 게시판도 난리가 났다. “뭉클한 감동!” “진정성을 믿습니다” 등 호평과 기대 일색이었다.
단순히 말 때문이었을까. 아마도 그보다 빨랐던 실천 탓이었을 게다. 국립현충원 참배를 마친 대통령 차량이 향한 곳은 취임식장이 마련된 국회가 아니었다. 건너편 자유한국당 당사였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온갖 비난을 퍼붓던 곳. 무엇보다 현직 대통령의 야당 당사 방문은 헌정 사상 처음이었다. “야당을 소통하고 타협하는 국정의 동반자로 여기겠다. 야당 당사를 방문한 것도 일회적이 아니라 임기 내내 그런 자세로 해나가겠다.” 언행일치로 협치와 통합을 보여준 신임 대통령에게 국민들은 높은 지지율로 화답했다.
지난 13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취임 2주년 후 처음 공개 석상에 나선 대통령의 얼굴에 웃음기는 없었다. 준비해온 메모를 ‘엄숙모드’로 읽기 시작했다. “세상은 크게 변하고 있지만 정치권이 과거에 머물러 있어서 매우 안타깝습니다. 촛불 이전의 모습과 이후의 모습이 달라진 것 같지 않습니다. (중략) 국회가 일하지 않는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뿐입니다.” 적시하지 않았지만 ‘청자(聽者)’는 누가 봐도 한국당. 범여권의 패스트트랙 추진에 반발, 민생을 내팽개친 채 장외투쟁을 벌이는 데 대한 원망과 분노가 서려 있었다. 대통령이 ‘뿔’ 날 만한 이유는 또 있었다. “막말과 험한 말로 국민 혐오를 부추기며 국민을 극단적으로 분열시키는 정치”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대통령 자신이 꼬여 버린 정국 수습을 위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찾을 수 없었다. 단지 “무한한 책임감”과 “국민 여러분의 삶에 더욱 가까이 가겠다”는 말뿐이었다. 이처럼 협치와 통합이 실종된 탓일까. 긍정과 부정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대통령 지지율이 2년 새 식어버린 국민의 기대감을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진정한 정치발전이 가능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선거 과정에서 제가 한 약속을 꼼꼼하게 챙기겠다.” 야당 관련 1호 공약은 ‘분열과 갈등의 정치 종식’. 이를 위해 ‘국정 동반자’인 야당과의 정례모임뿐만 아니라 “수시로 만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한국당 대표와 1 대 1로 못 만날 까닭이 없다. 필요하다 싶으면 야당 당사라도 먼저 찾아가야 한다.
두 번째 약속은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 나누기”. 궁극적으론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순 없는 일. ‘청와대 정부’라는 오명부터 벗어야 한다. 내각을 제쳐놓고 사사건건 청와대가 ‘만기친람(萬機親覽)’하는 구조 속에선 야당과 직접 충돌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지지 여부없이 훌륭한 인재를 삼고초려를 하겠다”던 인사탕평도 중요한 약속이다. ‘캠코더(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 인사’라는 야당 비난을 흘러들어선 안 된다. 시대착오적 색깔론, 막말을 동원한 혐오의 정치, 급격한 우경화. 한국당이 뒷걸음칠수록 한 발짝 더 다가서야 한다. 취임사의 다짐대로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의 모습. 한마디로 정치에서도 ‘햇볕정책’을 하겠다는 얘기. 당장 성과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민심은 움직이기 마련이다. 보수 진영의 양심적 합리적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모든 일이 그렇듯, 힘들수록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부산가톨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