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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기본소득, 평등사회로 가는 상상력 /이경식

4차 혁명 일자리 잠식,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인간적 생활기반 확보, 대한민국의 당면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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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울산 현대자동차노조가 개최한 ‘미래자동차 고용 토론회’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기술 발전이 예상보다 빠르게 일자리를 잠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기 때문이다. 노조는 전기차 전성시대에 들어서는 2025년이면 내연기관차 생산 비중이 57%로 축소되면서 현재 6341명인 엔진·변속기 부문 인력의 43%(2723명)가 줄어든다고 했다. 나아가 2030년에는 인력 감소폭이 82%(5222명)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2033년까지 현재 직업의 47%가 사라진다는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예견이 착착 가시화되는 모양새다.

문제는 이런 급속한 일자리 증발에 속수무책이나 다름없는 현실이다. 대안을 찾는 데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1, 2년에 불과하다고 한다. 자율주행차나 전기차 등 4차 산업혁명의 세례를 받은 미래자동차는 노동자에게는 재앙이다. 일자리 소멸은 소득 감소와 빈부 격차 확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청년 체감실업률이 25%를 넘어선 데다, 지난해 4분기 빈부 격차는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최악의 수준으로 벌어졌다. 장기 불황까지 겹쳐 설상가상이다.

해법은 막연하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사태인 만큼 해법은 치밀하고 근본적이어야 한다.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하는 상황에서 쟁기를 노로 사용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난바다를 무사히 항해할 수 있는 튼실한 동력원을 갖춰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려면 낡은 제도와 사고를 허무는 혁명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지난달 29, 30일 경기도가 주최한 ‘기본소득 박람회’는 시의적절했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토대로 다 함께 잘사는 평등사회를 건설하려는 행사 취지가 혁명적 상상력의 요건에 부합해서다.

기본소득에는 과연 그런 힘이 있을까. 아직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기본소득의 사상적 연원은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를 쓴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이 제도가 제대로 시행된 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여서다. 그중에서 성과가 두드러진 건 미국 알래스카주가 1982년부터 실시한 ‘석유 기본소득’이다. 이 제도는 석유가 모든 주민의 공유자산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알래스카주는 매년 1인당 300달러를 지급하다 2000년 들어 배당금을 2000달러로 늘렸다. 그 결과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0년간 알래스카주 상위 20% 가구의 평균소득이 7% 늘어날 때 하위 20% 가구는 그 4배인 28%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상위 20% 가구의 평균소득이 26% 증가할 때 하위 20% 가구는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12% 늘어나는 데 그친 것과 대조적이다. 기본소득이 전 주민의 소득을 높이고 빈부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유력한 방안임을 입증한 사례라 하겠다.
‘석유 기본소득’은 토지 공유사상에 맥이 닿아 있다. 미국의 정치사상가 토마스 페인(1737~1809)은 “토지는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누릴 권리가 있는 공유자산”이라며 지주들로부터 지대를 거둬 50세 이상, 21세 국민에게 10, 15파운드스털링씩 나눠주자고 제안했다.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헨리 조지(1839~1897)도 같은 관점에서 토지단일세를 징수해 국민 복지에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

토지+자유연구소는 이들의 사상에 입각해 한국판 토지단일세인 ‘국토보유세 기본소득’을 창안했다. 현행 종합부동산세를 없애는 대신 모든 토지에서 보유세를 거둬 전 국민에게 균일한 ‘토지배당(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안이다. 토지+자유연구소에 따르면 국토보유세를 신설할 경우 지난해 기준으로 세수 순증가분은 개인·법인 토지를 합쳐 19조6520억 원이다. 여기서 종합부동산세를 빼고 나면 약 15조5000억 원이 남아 국민 1인당 약 30만 원의 토지배당이 돌아가게 된다.

기본소득은 좌파와 우파를 아우른다. 좌파가 소득 불평등 해소에 주안점을 둔다면, 우파는 행정비용 절감과 근로 유인에 관심을 가진다. 소득 상위 10% 가구를 제외했다가 1600억 원의 소득조사 행정비용을 낭비한 뒤 보편적 지급으로 전환한 아동수당에서 관료주의의 폐해를 절감한다. 좌파든 우파든 기본소득의 공통기반은 인권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는 헌법의 사회적 기본권이 그 근거다. ‘기본소득은 곧 인권’인 셈이다.

오는 6월부터 전남 해남군이 전국 처음으로 연간 60만 원의 ‘농민수당’을 지급한다. 농민수당을 도입했거나 도입을 추진 중인 지자체는 모두 54곳에 이른다. 경남 고성, 충남 부여 등 35개 지자체는 기본소득 기본법 제정 등에 함께 노력한다는 공동선언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기본소득은 대한민국의 화두다. 화두 해결 여부에 미래가 달렸다. 혁명적 상상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논설위원 yis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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