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라고 지배인이 말했다. “‘괜찮습니까?’라고 정중히 말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내가 지배인에게 말했다. 지배인의 왼쪽 입술이 실룩거리며 오르내렸다.
“‘괜찮아?’와 ‘괜찮습니까?’ 중 손님께 정중하게 해야 할 말이 어떤 것입니까?” 내가 아까보다 더 조용하게 물었다. 그는 “‘괜찮습니까?’가 바르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여전히 왼쪽 입술이 씰룩거렸다.
“한국 사람이 일본말을 못 한다고, 그래서 못 알아들을 것이라고 반말하지 마라. 당신의 말을 정확히 알아듣고 당신의 태도에 불쾌해할 손님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나는 소리를 더 낮춘 채로 지배인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당신의 말과 태도는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감성으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언어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해를 하는 사람이라면 말 그대로의 내용을 통해 당신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는지 이해하는 척도인 이성의 언어가 되는 것이다. 말을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사람이라면 당신의 태도를 미루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조금 전 당신이 나의 맞은편에 앉은 저 초로의 프랑스 사람에게 오더를 받던 그 자세 그대로 우리에게도 하기 바란다. 그 지배인은 프랑스 남녀에게 주문을 받을 때 두 손으로 자신의 무릎을 짚은 채 고개를 프랑스 사람의 얼굴 가까이 들이대다시피 하면서 친밀감을 표했다. 다시 말해 누구에게나 같은 태도를 보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비싼 고급 식당에 온 이유는 맛은 기본이고 당신의 최고의 서비스를 곁들여 받으러 온 것이다. “밥값의 반 이상이 그 서비스 비용이 아닌가?”라고 말하면서….
나의 잔소리는 그가 윗입술을 씰룩거리지 않고 죄송하다고 말할 때까지 이어졌다. 나는 자리를 일어나면서 마지막으로 지배인에게 한마디를 더했다. “나는 당신을 이 식당에 올 때마다 보았다. 그리고 나는 반드시 이 식당에 다시 올 것이다”라고….
‘안도 다다오’의 누드 콘크리트 건물의 소음 해소 능력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다. 조금만 목소리가 높아지면 그 높아진 목소리의 몇 배는 더 증폭시킨다. 그리고 우리말은 된소리가 많다. 외국인의 귀에는 ‘큭, 컥’의 연속으로 들릴 뿐만 아니라, 말 소리가 자체가 시끄럽게 느껴진다. 영어가 우리 귀에는 ‘쏼라 쏼라’로 들리고, 더불어 중국어는 ‘쓰으쎄에 쓰으쎄에’로 사포를 가는 듯한 소리로 들리며, 일본어는 ‘어버버버 어버버버’ 하면서 혀 짧은 소리로 들리듯이 고유의 말마다 지닌 특징이 다르다.
한국 사람이 자주 많이 오는 이 식당에, 다시 말해 돈을 벌게 해주고 자신 봉급의 꽤 많은 부분을 책임지는 한국 손님이 좀 시끄럽기로서니, 이건 우리의 된소리 문제도 있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안도 다다오의 형편 없는 건축 설계에도 기인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한국인을 무시하는 지배인의 태도는 일류 식당과 호텔 종업원이 가져야 할 소양은 아닐 것이다.
한국인을 무시하기보다는 그런 건물을 지은 안도 다다오를 무시해야 하는 게 우선 아닌가? 아무튼, 생각지도 않게 우리는 그 다음 날 점심을 그 레스토랑에서 다시 먹게 되었다.
예약 시간이 남아 식당 입구의 의자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제의 그 지배인이 나를 알아보고는 뛰어나와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자세로 먼저 들어와 자리에 앉아 기다리셔도 좋다고 말하면서 허리를 낮춰 안내를 했다.
점심을 맛나게 먹고 자리를 털고 나오는데 누군가가 나를 따라 나오면서 명함을 건넸다. 그 호텔의 고객과 릴레이션을 담당하는 부장이었다. 어제의 일은 지배인을 통해 들었다면서 허리를 아주 깊숙이 숙인 채 사과를 했다.
자기 과실을 상부에 보고하는 시스템과 자신은 물론 그의 상관까지 나와서 정중히 사과를 하는 일본을 미국이나 유럽 사람이 보았을 때 어떤 느낌을 받게 될까? 우리는 일본을 미워하기만 하지 이런 것을 배우고 우리 것으로 만들고 있는가? 유대인의 속담이 생각난다. ‘최고의 복수는 잘 사는 것이다’. 우리는 일본에 배워 일본을 이겨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일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다.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