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 경찰청장 후보가 치안감(지방경찰청장급) 근무 시절 모친상을 당했는데 조의금이 1억7000만 원이나 걷힌 사실이 인사청문회 자료를 통해 세간에 알려진 적이 있다. 고위 공직자로 부적절하다는 여론이 적지 않았지만 결정적인 결격 사유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경조금을 문제 삼기가 썩 내키지 않았던 것 같다. 한땐 국회의원 보좌관이 결혼 축의금으로 신혼집을 마련했다는 ‘전설’도 있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기 한참 전 이야기다.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현금으로 내는 문화는 다른 나라에도 있다. ‘관시(關系)’를 중요시하는 중국이 대표적이다. 결혼식 축의금은 짝수로 빨간 봉투, 장례식 조의금은 홀수로 흰 봉투에 넣는다. 축의금은 600위안(10만 원) 800위안 1000위안 단위로 나간다. 조의금은 이보다 낮은 300위안 500위안 선이다. 일본은 더 낸다. 축의금이 3만 엔(30만 원) 5만 엔 10만 엔 정도다. 그래서 결혼식엔 꼭 부를 사람만 초청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경조사비로 현금을 주는 관습은 1970년대 이후 생긴 것으로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그전엔 돈 대신 곡식이나 술을 선물로 가져갔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올해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한 달 평균 경조사비 지출이 12만9000원이었다. 결혼 시즌인 5월엔 규모가 더 커져서 15만9000원으로 나왔다. 게다가 5월은 가정의 달이기도 해 각종 기념일이 줄을 잇는다. 지출액은 어버이날이 27만 원으로 가장 많고, 어린이날 13만 원, 성년의날 9만 원, 스승의날 5만 원 순이었다. 한 달에 70만 원 가까이가 각종 명목으로 가외지출된다는 계산이다. 이번 달 직장인의 통장은 ‘텅장’이 된다는 게 괜한 말이 아니다. 심지어 5월(메이)과 공포(포비아)를 합성한 ‘메이포비아’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부모 자녀 조카 스승을 보면서 뿌듯한 마음도 크지만 ‘텅 빈 지갑의 쓰라림’도 만만치 않다는 말이다.
얼마 전 서울시립대 연구팀이 2008~2018년 10년간 우리나라 국민의 경조사비 지출과 수입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적이 있다. 그 결과 놀랍게도 1만 원을 내면 9880원을 회수하는 것으로 나왔다. 요즘 평균 수명이 늘고 비혼이나 미혼이 증가하면서 앞으로는 이런 추세가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말도 있긴 하다. 그래도 자신이 낸 만큼 돌려받는다는 조사 결과는 “5월엔 잠적하고 싶어진다”는 샐러리맨들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