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목련꽃, 툭 /박명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5-02 19:17:56
  •  |   본지 2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1.

그날 나는 버스를 타기 몇 시간 앞서 목련꽃에 취해 있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는 박목월의 ‘4월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화사한 봄날이 충만해 있었다. 시간마저 달콤한 향기를 품고 있었다. 아, 이것이 진정 봄이구나! 그때였다. 툭, 한 송이 목련꽃이 떨어졌다. 익숙하고 잘 정돈된 봄의 흐름이 한순간 흐트러져 버렸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떨어진 목련꽃 송이를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2.

길가에 세워둔 순찰차에 기댄 젊은 순경도 멍하니 흩날리는 꽃을 보고 있었다. 그 길은 평소에 차들도 많지 않고 해서 마을사람들이 그냥 자유롭게 건너다닌다. 버스가 오자 나는 별 생각 없이 길을 건너갔다. 무심해 보이던 젊은 순경이 손짓을 했다. 설마 내 쪽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 테지…. 슬쩍 보고는 버스 쪽으로 갔다.

“어엇, 아저씨잇!”

갑자기 그가 소리를 질렀다.

이른바 무단횡단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아니, 이런 길에 무슨? 꽤 황망한 상황이었지만 약속 시간에 쫓기는 나로서는 그 버스를 타야 했다. 해서 미안하다는 목례를 하고 버스를 타려했다. 그 정도로 사과하면 씩 웃으며 다음부터 조심하세요,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젊은 순경은 정색을 하고 훈계를 한다. “멀쩡한 사람이 말이야….”



3.

아들이나 학교 제자뻘 되는 젊은 순경에게 실컷 면박조의 훈계를 듣는 수모를 당하고 나서 다음에 온 버스에 올랐으나 기분이 너무 찝찝했다. 체면이 형편없이 구겨져버렸다. 차라리 ‘이런 길에 무슨 무단횡단이오? 단속도 때와 장소를 보고 해야지, 당신 맘대로 해라!’하고 벌금이라도 무는 게 나을 뻔했다고 후회했다.

승객은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중년의 여자 승객 한 명이 버스가 멈추지도 않았는데 미리 일어나서 출구 쪽으로 가서 기다린다. 저만큼 앞쪽의 운전기사가 ‘버스가 서지도 않았는데 움직였다’고 나무란다. 나무라는 목소리가 사뭇 짜증스럽다. 그 중년의 여자 승객은 느닷없이 날라 오는 운전기사의 꾸짖음을 고스란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버스에서는 다음 정류장이 가까워지면서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승객 몇몇이 미리 일어나 출구 쪽으로 가서 대기했다. 운전기사의 꾸중이 그들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멀쩡한 사람들이 특별한 잘못도 없이 욕설 비슷한 말을 듣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내리고 버스가 움직이면서 운전기사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이제는 모든 승객에게 ‘수준이 낮다느니, 의식이 없다느니, 정차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되어 있는 규칙을 왜 지키지 않는가’ 하면서 짜증을 부렸다.

그러면, 자리가 없어서 서서 가는 승객들의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 라고 나는 묻고 싶었지만 또 어떤 불의의 공격을 당할지 몰라 그냥 가만히 지켜만 봤다. 아니, 언제는 빨리빨리 일어나 준비를 하지 않는다고 면박을 당하기가 일쑤인데, 미리 일어난다고 저러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가. 언제부터 고객이 운전기사의 눈치를 보고 다녀야 하고, 그야말로 멀쩡한 사람이 버스를 탔다는 이유로 운전기사의 책망을 듣고 있어야 하는가.

물론 원칙은 버스가 멈추고 하차 승객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안전하게 하차해야 한다. 그런 질서를 그들 스스로가 지키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규칙을 지키라고, 그것도 고운 말이 아니라 험악하게 나무라면 승객들은 무엇이 되는가 말이다.

내가 내릴 정류장이 다가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불안하다. 물론 버스가 멈춘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겠지만 잘 정돈된 시간의 흐름이 언제 어디서 갑자기 깨질지 몰랐다.



4.

그러고 보니 이 글을 읽은 어느 분이 4월의 노래를 흥얼거린 나에게 ‘역사의식도 없는’ 그런 쓰레기 같은 시인의 시를 좋아한다며 삿대질을 할지 모른다. 내가 좋아하던 것, 내 일상에서 편안하게 공존하던 것, 그 낯익은 시간들이 어느 날 불쑥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밀 것 같아 불안하다.

나쁜 일은 늘 한순간에 다가온다.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느닷없이 그렇게 불쑥 다가온다. 목련꽃 툭-하는 것처럼.

소설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울경, “동남권 광역 철도망 확충은 30분 생활권 완성에 꼭 필요”
  2. 2부산·울산·경남 영하권 초겨울 추위…일교차 유의
  3. 3'中 스파이 연루설' 젠슨 황 딸, ‘가족 문제’로 방한 취소
  4. 4靑 국정상황실장에 울산 연고 김태근 비서관, 2기 참모진 개편 PK 전면에
  5. 5[속보] 서울에 벌써 ‘첫 눈’ 내렸다... 작년보다 26일 빨라
  6. 6'저출생 여파' 내년 초등입학생 역대 첫 20만명대로 감소 유력
  7. 7양산 주남산단, 자금 조달 지연에 2028년까지 연장
  8. 8부산시, 국제e스포츠연맹에 임대료 유상 전환 통보... 사무국 해외 이전 우려
  9. 9“평소 접하기가 힘들었던 전통주 맛보고 싶다면 꼭 들르세요”
  10. 10[속보] 트럼프 “UFC 회장에 백악관 대변인 제안, 광기 어린 좌파로부터 우리 지켜야”
  1. 1靑 국정상황실장에 울산 연고 김태근 비서관, 2기 참모진 개편 PK 전면에
  2. 2오세훈, 증시 폭락 직격... “국민연금으로 지방 선거용 주식도박"
  3. 3[속보]이용철 법무장관 후보, 청문 준비 돌입…12일 준비단 첫 출근
  4. 4장동혁 “중도확장, 말로하는 연대·통합으로 되는 것 아냐”
  5. 5서영교 “조작기소 특검법안 ‘대통령 이해충돌’ 논란은 헛소리”
  6. 6임광현 “소방재원 확보 위해 미래대응기금 활용, 국회와 긴밀 협의”
  7. 7[속보]당정 “소방 필수투자에 2조원 재정지원…지방부담 완화 검토”
  8. 8민주 “정부에 ‘실거주 구분 없이 종부세 공제 14억’ 강력 요구”
  9. 9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10. 10청와대 정무수석에 최인호 HUG 사장 지명
  1. 1부울경, “동남권 광역 철도망 확충은 30분 생활권 완성에 꼭 필요”
  2. 2'中 스파이 연루설' 젠슨 황 딸, ‘가족 문제’로 방한 취소
  3. 3'저출생 여파' 내년 초등입학생 역대 첫 20만명대로 감소 유력
  4. 4“평소 접하기가 힘들었던 전통주 맛보고 싶다면 꼭 들르세요”
  5. 5녹색전환 핵심 ‘전기화’, 기업10곳 중 3곳만…“인센티브 필요”
  6. 6올해 3분기 상용직 증가분 75%는 60세 이상…20·30대는 감소
  7. 7식품·외식 분야에서 ‘웰니스 소비’ 앞으로도 지속된다
  8. 8제3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 9일 개막…"K-GX 전략 소개"
  9. 91249회 로또복권 1등 14명…당첨금 20억2505만 원
  10. 10[속보]"'블루웨이브 쇼크'에 세계증시 시총 하루만에 4800조 원 증발"
  1. 1부산·울산·경남 영하권 초겨울 추위…일교차 유의
  2. 2[속보] 서울에 벌써 ‘첫 눈’ 내렸다... 작년보다 26일 빨라
  3. 3양산 주남산단, 자금 조달 지연에 2028년까지 연장
  4. 4부산시, 국제e스포츠연맹에 임대료 유상 전환 통보... 사무국 해외 이전 우려
  5. 5정풍송 노래비 건립 재추진 움직임에 밀양시의회 “반대”
  6. 6부산서 부탄가스 난로 폭발 사고... 2명 화상
  7. 7진보당 "기본소득 8개 군 배제는 직권남용, 도지사 고발"…도 "하자 없어"
  8. 8[속보] 검찰총장 인선 절차 연기... 후보 추천위 이달 중 개최 예정
  9. 91월부터 공석 김해공항장, 내정자도 없어… 이유 물어도 ‘답변거부’
  10. 101월부터 공석 김해공항장, 내정자도 없어… 이유 물어도 ‘답변거부’
  1. 1‘승률 98.6%’ 배드민턴 안세영,사상 첫 2시즌 연속 11승
  2. 2삼성, 12년 만에 한국시리즈 정상 탈환…통산 9번째 우승
  3. 3승부는 원점…‘홈런 공장’ 대구서 거포들의 전쟁
  4. 4페이즈 신들린 블로킹 9개…읏맨, 시작부터 웃었다
  5. 5태권도, 北 전통무술로 각인될라
  6. 6거인 4인방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첫 우승 이끈다…한동희·최준용 중책
  7. 7롯데 전설 故 최동원, 야구인 최초 ‘올해의 스포츠영웅’
  8. 8코르다, LPGA 올해의 선수상 조기 확정
  9. 9동의대 미식축구부 타이거볼 4강 진출
  10. 10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우리은행
주민자치 모범현장 가다
지방의회 아래 선출직 주민의회…술집 개업 등 찬반 권한
주민자치 모범현장 가다
‘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코뿔소 없음과 진공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국제칼럼 [전체보기]
사라지는 것, 살아남는 것
국조 대상은 조희대가 아니라 증시 참사다
기고 [전체보기]
부산 관광 다음 키워드는 ‘건축관광’
‘성범죄 취업제한’의 사각지대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세레나데, 다정한 위로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초등 입학생 30만 붕괴
공공재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감기약을 먹어도 감기가 낫지 않는 이유
왜 제대로 비워지지 않는지 살펴야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북항 돔 아레나, BPA·부산시 대승적 결단 필요하다
위헌 소지 조작기소특검법…역풍 피할 수 있나
세상읽기 [전체보기]
동맹 속의 자율성, 핵자강과 전작권의 미래
낯설고도 궁금했던 부산과의 첫 만남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오래된 건축이 만드는 새로운 연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양달석의 ‘목동’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CEO 칼럼 [전체보기]
십시일반(十匙一飯), 나눔이 만드는 연말의 온도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