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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문설주에 기대어 비극을 훔쳐보다 /정훈

힘겨운 세상 속 우리사회, 정의라는 희망 안고 살아

직간접적 폭력 목격해도 진실 외면하는 경우 다수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4-24 19:34:33
  •  |  본지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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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붙잡아 둘 수 없는 사월이 가고 있다. 우리는 되돌리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안다. ‘세월호’가 그렇고, ‘4·19’가 그랬으며, ‘제주 4·3’이 그렇다. 더욱 가까이는 어제 내가 지인에게 상처를 주었던 술자리의 장면이 그렇다. 세월이 무던하게만 흘러가리라 여기지만 뜻하지 않은 시각과 장소에서 사건은 벌어진다. 딱히 별일 없이 데면데면하게 지내던 이웃이 어느 순간 살인마로 돌변하고, 결혼을 포기한 친구는 시골로 잠적해 소식이 끊겨버리고 만다. 늘 쾌활했던 후배가 우울증에 못 이겨 세상을 포기하고 싶다는 말을 내뱉는다.

잔인한 달이 지나면 더 잔인한 오월이 기다리고 있음을 우리는 문득 깨달을 것이다. 모든 역사는 우연의 옷을 걸친 필연의 연극 무대일까. 아니면 우연이 겹치고 겹쳐 마침내 필연의 궤도를 그리는 듯 나아가는 철로와 같은 것일까. 어떤 역사가나 철학자도 결코 풀지 못할 난제들에 우리는 늘 직면한다. 왜 우리는 상식적인 인간의 기대지평을 벗어나는 일을 보고 겪고서야 비로소 인간사회와 역사의 아이러니를 떠올리는가. 왜 유독 선량하기만 한 사람들일수록 참변과 재앙을 피할 수 없는가. 그리고 어째서 역사의 심판을 진작에 받아야 할 자들이 마치 역사의 재판관이라도 된 양 의기양양하게 눈을 부라리며 군림하려 드는가. 이 모든 역설적인 상황에서도 우리는 정의와 민주와 평화가 끝내 우리를 배신하지 않으리란 막연한 희망으로 살아간다.

사람에게 희망은 눈앞의 비극을 목격하는 자리에서 싹 트는 마음의 홀씨와도 같다. 삶이 어렵고 지칠 때일수록 그 홀씨는 문득 애초부터 없었던 듯 무기력과 절망만이 흥건해지지만, 우리들은 대부분 힘겨운 대로 세상이라는 무대의 제3막을 향해 묵묵히 걸어간다.

근엄한 ‘윤리교사’들은 세상이 이렇게 어지럽고 혼란한 이유를 결여된 윤리의식에서 찾는다. 윤리도덕의 부재가 세상을, 그리고 사람을 혼탁하게 만들었다는 식이다. 일견 타당한 시각이지만 어쩐지 물에 탄 물처럼 하나 마나 한 말로 들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참혹하고 예기치 못한 사건의 본질이나 원인을 어떤 결함에서 찾는 일만큼 손쉽고 무책임한 진단은 없다. 인간이기에 실책과 오점을 남길 수밖에 없다는 논리 또한 숙명론의 혐의를 벗어나기 어렵다.

문제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기나긴 역사의 발자취에 흘린 피 눈물은 곧 우리 모두가 떠맡고 책임져야 할, 묻어두고 싶지만 결코 그래서는 안 되는 우리 신체의 조각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서는 객관적이고 냉철한 고준담론이나 사회 철학적 비평이 끼어들 자리가 별로 없다. 우리 이웃의 비극이 전하는 메시지는 의식하고 있었든 그렇지 않았든 우리 자신이 평소에 전하고자 했던 간절한 육성이다. 그러니까 ‘관계의 사회학’의 관점에서 이 세상에 벌어지는 일련의 문제들을 살펴봐야 하겠다.
관계는 타자에 대한 환대와 요청이 전제가 된 상태에서만이 긍정적인 결실을 맺는다. 서로 대립된 상태로 자리매김하는 헤겔류의 변증법적 사고가 남긴 유산 가운데 ‘인정욕망’이란 게 있다. 인정욕망은 인간의 사회적 욕망의 하나로서, 쉽게 말해 타인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욕망이다. 힘과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선망을 이끌어내며, 거기에서 만족을 얻는 비자발적 욕망이다. 여기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늘 의식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타인의 존재 자체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기를 제외한 ‘나머지들’을 자기만족을 위한 발판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저울의 추가 한곳으로 기울어진 관계가 균형을 회복하지 않은 채 오래 지속될 때 그것은 폭력의 형태로 드러난다. 겉으로는 자기 욕망을 꾀하기 위해서 폭력이라는 수단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은 폭력을 통한 관계 재설정이라는 개인적·사회적 위기의식의 무의식적인 메커니즘이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직접 체험하든 언론과 같은 미디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체험하든 간에 ‘폭력’이라는 비극적 행위를 목격한다. 우리는 어떠한 폭력일지라도 무조건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곧잘 듣곤 하지만, 사회의 폭력적 현상에 숨겨진 진실은 외면하는 경향이 많다. 그 진실은 여하한 형태의 욕망들이 충돌하여 마침내 사회적 위기의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공동체적 합의’라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특정한 존재에 대한 ‘집단 살해 행위’다.

팍팍하고 고단한 사월이 지나간다. 우리가 짐짓 사태와 무관한 듯 마치 문설주에 기대 방안의 비극을 엿보더라도, 이 알리바이가 우리 자신을 구원하지는 못한다. 생각할수록 우리는 슬픈 연극을 앞으로도 오랫동안 치러야만 한다는 느낌이 먼지 낀 하늘을 더욱 더 뿌옇게 짓누르는 듯한, ‘빌어먹을’ 봄날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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