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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금융중심지 전제는 운송·물류 개선 /차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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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4-24 19:14:36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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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 꿈꾸는 모습 중 하나는 ‘금융중심지’다. 우리나라 경제발전과 함께 금융산업도 꾸준히 성장해왔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한 모습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기존 금융산업 중심인 서울을 벗어나 부산에서 금융산업이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해보자는 것이 10년 전 부산시 제안이었다. 그럴듯하기도 하고, 어림없는 소리 같기도 하다.

어림없는 소리라고 할 수 있는 이유와 증거는 아주 많다. 문현단지에 ‘국제금융센터’가 터를 잡고 있지만 거기에는 ‘국제’라는 말이 무색하게 외국계 금융기관이 없다. 한국거래소와 예탁결제원 등 금융 ‘유관기관’만 있을 뿐 은행 증권 보험 등 전형적 ‘금융기관’은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에 있는 시중은행이 부산으로 이전하면 당장 지방은행으로 전락해 영업이 불리해지므로 부산행은 생각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은행 없는 금융’이 가능할까. 회의적이다.

하지만 그럴듯한 제안일 수도 있다. 부산의 지리적 특징과 경제적 기능을 감안하면 부산이야말로 금융기관들이 결집하기 좋은 장점을 두루 갖춘, 매력적인 도시다. 직업상 오래 관찰해 왔던 뉴욕과 시카고가 좋은 증거다.

뉴욕은 건국 초부터 미국의 대표적 대도시였지만 금융업 중심은 아니었다. 미국 금융업의 중심은 19세기 후반까지 필라델피아였다.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을 위한 전비를 마련할 때도 뉴욕 금융업자보다 필라델피아 부자들을 먼저 찾았다. 뉴욕은 별로 인상적인 도시도 아니었다.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미국여행기’에서는 뉴욕보다 보스턴·필라델피아·볼티모어 등 오늘날 중소도시에 훨씬 많은 칭송이 담겨 있다. 시카고는 언급조차 없었다.

오늘날 미국 금융중심지들은 19세기 초의 운송·물류혁명 때문에 생겼다. 1807년 뉴욕 허드슨강에 증기선이 처음 등장했지만, 그 증기선 덕을 가장 많이 본 것은 중서부였다. 옥수수 담배 밀 면화 등이 모두 미시시피강 증기선에 실려 뉴올리언즈를 통해 유럽으로 보내졌다. 인구는 서부로 이동하고, 뉴욕 지위는 좀 낮아졌다.

그런데 1825년 이리운하 개통을 통해 상황이 달라졌다. 대서양 입구인 맨해튼에서 뉴욕주 북부의 버팔로까지 350마일 이어진 긴 운하가 완공되는 순간 애팔래치아 산맥 너머의 5대호는 뉴욕시의 뒷마당이 되었다.

1840년대에 이르자 철도망이 보급되면서 뉴욕을 중심으로 한 거대 물류시스템이 더욱 정교해지고 조밀해졌다. 시카고는 처음에 미시간호와 미시시피강의 운하시스템을 이어주는 경유지에 불과했지만 철도망이 확장되면서 북서부의 관문으로 격상되었다. 운송시스템의 발전과 함께 인구는 흩어졌지만 시장은 더 집중되었다. 주변 중소도시의 자잘한 시장들이 뉴욕과 시카고 등 교통의 중심지로 흡수된 것이다. 운하와 철도가 결합된 뉴욕과 시카고가 필라델피아를 제치는 순간이었다.

이런 과정을 한국에 대입해보면 부산은 금융중심지로서 좋은 자격을 갖추고 있다. 부산은 해상 육상 항공의 모든 차원에서 우리나라와 세계가 입을 맞추는 입술이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부산 인구가 감소했지만 결정적 장애는 아니다. 증기선 등장 이래 중서부로 인구가 이동했던 미국 경험과 다르지 않다. 해상 육상 항공의 연계가 조금 더 편리해지면 흩어졌던 인구는 언제든 다시 돌아오고 시장은 커진다. 부산 제조업이 옛날의 지위를 찾지 못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 시카고 제조업 비중이 높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결국 금융중심지로서 부산의 성공 여부는 인프라 확충에 달렸다. 안전하고 쾌적한 공항, 효율적이고 넉넉한 항만, 빠르고 편리한 철도망이 입체적으로 연결될 때 그 위에 금융중심지의 지위가 얹힐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운송·물류를 위한 투자가 곧 금융중심지 육성이다. 정부의 적절한 예산 투입은 일석이조 효과를 가져 온다.
한 가지 더. 문현금융단지를 관통하는 동천의 악취도 문제다. 악명 높은 동천 악취를 남겨둔 채 국내외 금융기관을 초대하는 것은 집 안을 치우지 않고 손님을 맞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집안 망신이다.

한국은행 부산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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