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유럽 출장 중 마시는 물을 물병에 담아 판매하는 것을 우연히 목격하고 도대체 물을 왜 돈을 주고 사서 마시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도 돈을 주고 물을 사서 마시는 것이 당연시됐다. 그때 이러다가 공기도 돈을 주고 사서 마시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20년도 지나지 않아 실제 공기를 돈을 주고 사서 마셔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과거에는 아침 일과를 오늘의 날씨를 보고 시작했지만 최근에는 오늘의 미세먼지를 확인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일이 일상화됐다. 기술 개발은 인류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드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삶의 풍요는 우리에게 항상 풀어야 할 숙제를 남기면서 보다 높은 기술개발을 요구하고 있다. 화석연료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의 개발은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지만 물과 공기를 구입해 마셔야 하는 불편함을 주었다.
최근 고유황유를 사용하는 선박이 항만대기오염원으로 지목되면서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던 주역이 미세먼지의 주범이 되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대기환경 규제를 통해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미세먼지 등의 배출량을 제한하고 법적 강제화를 통해 선박이 규제를 만족할 수 있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를 만족하는 방안으로 고유황유를 고가의 저유황유로 대체하여 사용하는 방법, 고유황유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황산화물을 저감하는 장치를 설치하는 방법, 추진연료를 LNG 등의 가스로 변경하는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최근 해운회사는 낮은 운임으로 인해 경영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대기환경규제까지 대응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더욱이 대기환경규제에 대한 3가지 대응책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저유황유를 사용하는 방안은 연료비용이 증가할 뿐 아니라 훌륭한 윤활유 역할을 하는 황 물질이 부족해져 엔진의 윤활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황산화물 저감장치를 설치할 경우 신조 선박에 설계 단계에서 반영하더라도 제작기간이 2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건조 일정에 맞춰 납품 받는 것이 쉽지 않다. 기존 선박에 장착하는 경우에도 선박 운항을 멈추고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공간 부족으로 저감장치를 설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평형수처리장치와 같이 규제 발효 시점이 연기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가스시설은 위험하다는 편견이 존재하며, 이미 운영 중인 항만에는 가스공급시설을 확충할 경우 항만 사용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발생하는 손실이 크기 때문에 추진연료를 가스로 변경할 경우 선박건조 비용이 상승하는 문제와 현재 항만에서의 가스공급시설이 부족한 실정을 감안하면 합리적인 선택이라 할 수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3가지이지만 어느 하나도 명쾌하게 선택할 수 있는 답안이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조선해양산업 관계자의 혜안이 필요하다.
선박에 연료를 공급하는 기업은 저감장치 설치나 가스 추진으로의 전환이 어려운 소형 선박에 대한 수요를 파악하여 저유황유 공급량의 증가를 예상하고 대비해야 한다.
저감장치는 2020년 이후에는 신규 선박에 물량이 집중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생산설비를 과도하게 늘리는 것은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따라서 조선해양기자재기업은 저감장치 설치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되는 중대형 선박에 대한 건조 계획과 선박개조에 대한 수요를 파악하여 조선소와의 협력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가스 추진 관련 기자재기업은 가스연료 추진으로 전환될 것으로 판단되는 대형선박에 대한 수요를 파악하여 가스연료 추진 및 연료공급시설의 핵심 기술개발과 사용실적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정부는 공공선을 가스추진 선박으로 발주하여 국내기업에게 사용실적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고, 연료공급시설을 확충하여 단기간에 가스추진 선박 관련 산업이 활성화되어 조선해양기자재기업이나 중소형 조선소에 활력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업실적을 바탕으로 대형 가스추진 선박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해야 한다.
미세먼지 오염의 주범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조선해양산업에 종사한다는 자부심을 다시금 회복하기 위해서는 고도화된 기술개발과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주어진 3가지 선택지 중 1가지를 선택하는 게임에서 한 사람이 최후 승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도록 관계자 여러분의 협력과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한국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