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국내 건축물 중 30년 이상 노후된 것이 전체 40%를 차지하게 됩니다.”(이낙연 국무총리, 이달 초 도시재생특별위원회). 그러니 새로 짓는 거 못지 않게 도시재생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라고 이 총리는 밝혔다. 이렇듯 도시재생이 시대적 화두다. 문재인 정부의 관련 사업도 가히 봇물을 이룬다. 올 상반기 부산 등 22곳이 지정된 걸 포함해 190곳의 사업지가 생기고, 여기에 2032년까지 1조4000억 원을 투자한다니 말이다.
우리나라 도시재생은 이 총리의 지적처럼 아직 시작 단계다. 선진국에 비해 역사가 일천하니 전문인력이나 성공사례도 많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불도저식 개발지상주의가 아니라 재생의 새로운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오래됐다고 깡그리 밀어버리는 경제논리만이 능사가 아닌 것이다. 그보다 지역 정체성과 역사·문화성을 살리면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주민 삶 향상을 꾀해야 한다는 얘기다.
타산지석이 될 만한 세계적 사례는 수두룩하다. 1980년대 중반까지 흉물로 방치됐던 도심 고가 폐철로를 멋진 공원과 산책길로 탈바꿈시킨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가 대표적이다. 산업유산의 흔적을 없애지 않고 그 가치를 현재에 맞게 살린 결과다. 이는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 시카고의 블루밍데일 철로, 서울역 고가 보행로 같은 도심재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외 우범지대로 전락한 옛 화력발전소를 사람들이 즐겨 찾는 미술관으로 바꾼 런던의 ‘테이트 모던’, 버려진 양조장이 창조적인 문화예술지구로 변모한 토론토의 ‘디스틸러리’, 방치된 공장지역이 훌륭한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베이징의 ‘798예술구’도 주요 사례로 꼽힌다.
도시재생과 뗄 수 없는 요소는 보행환경이다. 걷기 좋아야 사람이 모이고 도시가 살아나서다. 위에서 언급한 지역도 다 그런 범주에 든다. 그중 미국 북서부의 태평양 연안 도시 포틀랜드를 눈여겨볼 만하다. 1960년대부터 도시재생을 꾸준히 전개한 덕에 미국에서 가장 걷기 좋고 살고 싶은 곳으로 평가받아서다. 2년 전 출간된 ‘포틀랜드, 내 삶을 바꾸는 도시혁명’(야마자키 미츠히로 지음)에 그 스토리가 생생하게 적혔다.
간략히 말하면, 포틀랜드는 도보 20분 권역의 라이프스타일이 구축된 도시다. 승용차를 타지 않고 걷거나 자전거·버스로 20분 이내 직장에 갈 수 있고 생활용품을 살 수 있는 구조다. 이런 공동체가 시내 곳곳에 존재한다. 그만큼 보행과 대중교통 체계가 뛰어나다. 거리를 디자인하면서 지구 전체의 조화를 반영하고 ‘오픈 스페이스’를 넉넉하게 확보한 것도 핵심 포인트다. 옛 건물과 새 건물이 어우러진 것은 흔한 풍경이다. 또 1993년에는 미국 내 최초로 지구온난화 대책을 추진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대폭 줄였다. 주요 사업에 시민의견을 수렴하고, 주민참여로 추진하는 것도 체질화돼 있다. 그 점에서 포틀랜드는 ‘스마트 성장’으로도 불린다. 이는 1980년대 미국에서 제시된 대안적 도시정책 패러다임이다. 경제발전과 환경보호, 시민 삶의 질을 동시에 고려한 결과다. 차 중심의 개발 위주나 무질서한 도시 확산을 지양하고, 걷기 편리한 환경과 다양한 주거 유형 및 커뮤니티 조성 등에 역점을 둔다.
우리나라는 도시재생뿐 아니라 보행환경도 미흡한 상태다. 보행사망자 기준 80%가 보행과 차량이 섞인 ‘보차혼용도로’에서 일어나는 실정이다. 부산도 별 다를 바 없지만, 과거보다는 보행여건이 나아지고 있다. 2009년 광역단체 중 최초로 ‘걷고 싶은 부산’을 선포하고 갈맷길 확충에 나선 영향이 크다. 올 6월이면 어느새 10년을 맞는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열악한 도심 보행길이다. 외곽에 걷기 좋은 길이 아무리 많아도, 일상과 밀접한 도심길이 불편해서는 인정받기 힘들다. 그래서 이제는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 같은 용기가 필요할지 모른다. 뉴욕시는 차도가 90%였던 이곳 도로분배구조를 확 바꿔 보행천국으로 만들었다. 거리 공간을 사람에게 되돌려준 셈이다.
어느 학자는 도시재생을 위해서는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를 바꾸는 게 더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대규모 개발이나 건물 짓기 등에 매몰되지 않고, 오래됐더라도 잘 돌보고 유지관리하는 게 올바른 재생이라는 뜻이다. 곱씹어볼 만하다. 과거 20년 전 독일의 대표적 언론매체가 한국 여행관광특집 기사에서 서울의 매력으로 지목한 곳이 있다. 그것은 인사동처럼 사람들로 활기가 넘치는 도심 골목길이었다. 요즘도 별 다르지 않지 싶다.
포틀랜드를 위시한 외국의 도시재생이 좋아 보여도 무조건 따라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참고하거나 수용 혹은 변용할 것은 그대로 하되 어디까지나 우리의 역사·문화와 정체성, 공공이익, 주민 삶 등에 맞도록 추진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지속 가능한 도시로 나아갈 수 있다.
논설위원 ksyoung @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