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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칼럼] 누구를 위하여 ‘경제의 종’은 울리나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4-18 19:18:15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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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렵다. 이 말은 경제전문가들에게나 보통 사람에게나 ‘일상의 탄식’이 된 듯하다. 우리는 오늘날 ‘만성화된 경제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이는 국내적일 뿐만 아니라 글로벌한 현상이기도 하다. 사람의 병에서도 그렇듯 급성보다 만성 질환이 삶을 더 힘들게 할 때가 많다. 이 와중에 현대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보여주는 소식들은 삶에 지친 사람을 더욱 짜증나게 만든다.

미국과 중국의 정보기술 분야 거물인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와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부적절한 처신 및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부와 사회적 영향력을 모두 갖춘 인물로 존중받고 있지만 저커버그의 경우 가족까지 포함된 ‘고액 경호비’ 논란으로, 마윈은 노동자들의 초과근무를 부추기는 듯한 ‘999(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6일 근무)’ 발언으로 비판받고 있다. 기업 경영자와 일반 노동자 사이의 삶의 괴리는 경제 위기에 잠재하는 또 다른 측면이다.

도대체 경제란 무엇인가. 최근에 경제를 보는 시각에서도 괴리를 보여주는 일이 있었다. 크게 뉴스가 되지 않았지만, 나 같은 경제 문외한에게는 본질적인 문제처럼 보였다. 이달 초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원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조언을 들었다. 여러 발언 가운데 경제학 교수를 지낸 전 총리의 말이 유난히 주목을 받았다.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경제정책이라기보다 인권정책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경제정책이 아니라 인권정책이다”라는 단언적 표현으로 뉴스를 내보낸 언론도 있었다. 촌철살인 같은 표현이라고 여겨서 그랬을까. 아니면 어떤 정치적 의도에서 그랬을까.

어쨌든 그것은 최저임금 인상을 포함한 저소득층의 삶의 질 개선을 경제성장의 바탕으로 삼고자 하는 정책에 대한 비판인 것 같았다. 그 말의 저변에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오히려 고용률 저하를 가져올 수 있고 결국 전체 소득이 줄어 경제성장에 저해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려 있는 것 같았다. 경제학자로서 그러한 우려를 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오히려 경제와 인권이 그렇게 동떨어진 문제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일상에서 쓰는 말과 개념은 사람의 의식에 큰 영향을 준다. 나는 종종 내가 무지하다고 느낄 때면 각 분야의 원론 도서들을 들춰본다. 아직도 대학시절 읽었던 폴 새뮤얼슨의 책 ‘경제학(Economics)’을 지니고 있는데, 50년 전 영어판이지만 생각을 다시 새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새뮤얼슨은 ‘경제학인 것’과 ‘경제학 아닌 것’을 설명하면서, 경제학이 원래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었음을 상기시킨다. 곧 경제학은 하나의 전문 분야이지만 나라 살림 전체의 복잡한 여러 분야와 연계돼 있음을 강조한다.

역사적으로 현대 경제학은 18세기 영국의 도덕철학에서 유래하며 19세기 말까지 정치경제학으로 불렸다. 19세기 말 수학적 모델을 경제현상 분석에 적용하면서 경제학의 개념은 좁아지기 시작했고, 1920년대부터 ‘이코노믹스’라는 말이 경제학을 대표했다. 물론 경제현상은 ‘양(量)’을 다루기 때문에 수리(數理)와 자연스레 연결된다. 즉 경제는 항상 많고 적음을 다룬다. 생산과 소비의 많고 적음, 소득, 물가, 수출입, 세금, 금리, 환율 등의 많고 적음 또는 높고 낮음을 다루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그 많고 적음이 발생하는 이유를 찾고 각 분야의 많고 적음을 조정하는 일은 수학적 이치를 넘어선다.

경제란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줄임말이다.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유가에서는 이것의 구체적 실천 과제로 정덕(正德), 이용(利用), 후생(厚生)을 든다. 정덕은 사람으로서 올바른 도덕성을 유지함이고, 이용은 일상생활에 편리한 도구나 기계를 만들어 사용함이며, 후생은 의식주를 비롯해 건강한 삶을 유지하도록 적절한 환경을 조성함을 일컫는다. 유가의 경세사상은 백성들이 일상에서 올바르고 편리하며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복지사회 건설’을 기본으로 삼는 것이다. 이 점에서 서양의 ‘폴리티컬 이코노미’와 동양의 경세제민은 일맥상통한다.

경제정책과 인권정책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경제와 인권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사이에 복지라는 말을 넣어보자. 그러면 이 세 개념은 한 줄로 연결된다. 경제정책이 복지정책과 서로 배타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복지는 이 세상에서 사람이 대우받고 잘살 권리, 곧 인권을 전제로 한다.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둔 경제정책을 쓴다고 해서 그것을 경제정책이 아니라 기업정책이라고 할 것인가.
좁은 의미의 이코노믹스는 편협한 세계의 이치다. 그런 경제 논리는 분명한 만큼 다른 이치에 대해 배타적이다. 세상의 이치를 좁은 경제 원리에 환원시키면 차별화된 경제 영역을 얻을 수는 있지만 세상을 잃는다. 경세제민하지도 못한다. 자유시장 경제론의 대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도 경제학자가 단지 경제학자일 뿐일 때는 짜증날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했다.

물론 경세제민으로서 경제는 어렵다. 쉬울 리가 있겠는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도 마찬가지다. 방법론에 오류도 많다. 수정해서 나아가도록 따가운 비판은 필요하지만 정책 자체를 한마디로 일축하는 것은 야박하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집권 정부가 경제를 죽였으니 ‘경제를 살리겠다’는 후보자가 우후죽순처럼 등장한다. 그야말로 문제는 경제가 된다. 그러나 경제는 죽은 적이 없다. 만성질환을 앓고 있을 뿐이다. 만성질환은 신체 구조와 생활 습관을 개선할 때 완치는 아닐지라도 서서히 나아질 수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현대 경제현상에 접근하는 방법이 해결이 아니라 개선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뮤얼슨은 경제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라는 메타포를 가져왔다. 헤밍웨이도 소설 제목으로 차용한 바 있는 존 던(John Donne)의 이 시구에서 조종(弔鐘)은 살아 있는 사람 모두를 위해서 울린다. ‘경제의 종’도 오랜 지병을 지닌 경제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해 울린다.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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