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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차돌멩이처럼 단단하게 /김정애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4-18 19:18:11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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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나무들이 아름답다 못해 찬란할 지경이다. 저토록 눈부신 연두만큼 아픈 빛깔이 또 있을까.

서사민요를 공부하다 보니 어쩌다 영미권 발라드인 ‘The Wife of Usher’s Well’이라는 노래를 알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노랫말을 알게 되었다. 노랫말의 뒤 소절이 다음과 같다.

‘사랑하는 어머니, 우리 머리에 푸른 풀이 자라요./ 우리 발에 푸른 이끼가 자라요./ 우리 세 아기를 위해 당신이 흘린 눈물이/ 우리의 수의를 적시지 않아요.’ (Green grass grows at our head, dear mother./ Green moss grows at our feet./ The tears that you shed for us three babes/ Won’t wet our winding sheet.)

타향으로 갔던 아이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는 울부짖는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산 채로 돌아올 때까지 바다는 잔잔하도록, 순풍은 그치지 않도록 빌고 또 빈다. 어머니의 정성이 극진해서 마침내 아이들이 어머니를 찾아온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서 성찬을 마련하고 깨끗한 잠자리를 준비한다. 그러나 자식들은 어머니의 음식을 한 입도 먹지 않고, 새벽녘이 되자 어머니를 떠나 자신들이 속한 세계로 간다.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의 단절 앞에서는 누구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위의 노랫말에서처럼 죽은 자를 귀환하게 만드는 사람은 많지 않다. 죽은 자를 귀환하게 만드는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버지의 죽음, 후배의 죽음을 겪어봤지만 나는 그런 힘을 낼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도, 후배의 죽음도 고스란히 받아들여졌다. 투병 기간 시시각각 나빠져 가는 상황의 결과는 결국 죽음임을 알았고, 과정과 결과 모두 온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죽음에 항거할 힘의 원천이 없었다. 슬프고 아팠지만 그것이 다였다.

이해할 수 없는 죽음, 인정할 수 없는 죽음, 아무리 애써도 납득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다를 수밖에 없다. 아무런 이해 없이 불가항력의 단절감 속에 내동댕이쳐진다면, 인정할 수 없는 단절을 강요당한다면, 몇 년의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노래 속의 어머니처럼 주술을 외워서라도 죽음에 항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5년이 아니라 50년이 지나도 까닭이 밝혀지지 않는 죽음은 결코 수용될 수 없을 것이다.

지겹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정말 지겨워 견디기 힘들다면, 왜 죽어야만 했는지를 밝히는 데 힘을 보태면 좋겠다. 죽음에 대한 의문이 풀리고 나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죽은 이들을 그들이 속한 곳으로 가게 놓아주게 될 것이다. 격렬하게 지겹다는 사람들은 어쩌면 진실이 밝혀지는 걸 원치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연둣빛 봄이 오는 것이, 화사한 4월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봄바람이 살랑거리면 마음이 무거웠다. 언제부터인가 지나치게 심약해져서 슬프고 아플 것 같은 드라마와 영화는 볼 엄두를 못 냈다. 개봉한 지 며칠 된 영화 ‘생일’도 혼자서는 보러 갈 용기가 안 나 주저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마음도 혹시 지겨움의 한 종류일까?

급한 일로 잠깐 짬을 내서 만난 사람이, 새로 시작한 드라마를 보라고 했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 같아 못 보겠다고 했더니, 꼭 봐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얼마나 마음이 물렁해져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건 아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런 마음은 진실을 감추려고 하는 이들을 돕는 것이다’라는 자각이 번뜩 들었다. 물러진 마음을 다지고 다져 차돌멩이처럼 단단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생각하자 정말 마음이 단단해진 기분이 들었다.

남은 4월은 무겁지 않게 하루하루를 보내야겠다. 드라마도 보고 영화 ‘생일’도 보고 진실을 규명하는 데 힘을 보태면서 초록이 되기 전의 그 여리여리한 연두를 기쁘게 즐겨야겠다.

세월호 유족들과 그날의 아픔을 함께 나눈 모든 이가 그 수많은 죽음의 진실을 정확히 알고, 진정으로 애도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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