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제대로 미친 선배가 있다. 축구할 때 가장 행복하고 공 차는 맛에 세상을 산다고 말한다. 얼마 전 이 선배가 부산에 온 적이 있다. 식사하러 가는 차 안에서 뜬금없이 전 축구 국가대표 선수였던 A 씨를 아느냐고 물었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국가대표 출신으로 유명 구단 감독까지 역임한 사람이라 안다고 했다. 왜 그러는지 물었다.
선배는 얼마 전 A 씨가 속한 조기 축구팀과 경기를 했다며 말끝을 흐렸다. 속사정도 모르고 전 대표 선수와 게임해서 “가문의 영광이었겠네요”라고 하자 선배는 그 팀과 경기 도중 큰 사달이 났다고 털어놨다. 사달이 났던 원인은 알량한 자존심 싸움이었다.
국가대표 출신이 속한 이 팀은 선수 출신과 아마추어가 섞여 있고, 선배가 속한 팀은 전원 변호사로 구성된 팀이었다. 대부분 선수 출신으로 구성된 팀 입장에선 펜대만 굴리는 변호사 팀에게 패할 경우 자존심이 이만저만 상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와 달리 변호사 팀은 전 국가대표를 포함해 대부분 선수 출신으로 구성된 강팀을 이길 경우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 순간)’이 될 수 있고 설령 패한다 하더라도 겨자씨만큼도 손해볼 것 없는 시합이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변호사 팀은 밑져야 본전, 대부분 선수 출신으로 구성된 팀은 이겨야 본전 상황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자신들의 영웅한테 한 수 배울 요량으로 경기에 임했던 변호사 팀 선수들은 전 국가대표 출신들로부터 ‘특유의 근성’을 목격하고 망연자실한 것 같다. 실망을 넘어 적대적인 감정까지 쏟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평소 국가대표에 대한 동경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 나쁜 감정과 태도를 보여준 것은 어떤 이유로도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동호회 수준의 일반인 가운데 국가대표 출신 선수와 경기나 연습을 하고 나면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시합 후엔 그들의 태도나 행동에 대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누구보다 경기장에서 모범적인 태도를 보여줘야 할 사람들이 놀이마당에 불과한 시합에서 승부에 집착한 나머지 눈꼴사나운 태도를 보인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종목을 막론하고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만큼 어렵고 힘들다. 축구는 K리그에서만 뛰어도 최소 0.63% 안에 들어야 한다. 날고 기는 프로선수 중 국가대표(24명)에 선발될 확률은 0.02%에 불과하다. 승패를 떠나 경외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경기한다는 것 자체가 일반인에겐 큰 영광이고 흔치 않은 경험이다. 이런 영광스러운 순간이 실망으로 바뀌는 것은 피차 득이 될 것이 없다.
선수 출신들은 주변 사람들이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격려해준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특히 국가대표 출신들은 국민에게 받은 응원과 격려를 경기장에서 만큼은 좋은 태도와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보답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재임기간 때보다 퇴임 후 더 사랑받고 훌륭한 대통령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혹여라도 경기장에서 자기를 제치고 나가는 아마추어 선수를 보고 자존심 상한다거나 무시당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경기장에서 뛰는 걸음걸음마다 자신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서 평생 멋진 추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열린 마음으로 도와주자.
시인 배연일은 사랑은 아카시아 향내처럼 5월 해거름의 실바람처럼 그렇게 온다고 했다. 비록 세월이 흘러서 몸이 둔해지고 기량이 예전만 못하다고 해도 함께 호흡하며 영국 신사처럼 멋진 태도를 보여준다면 화려한 선수 시절보다 더 큰 사랑과 존경받을 것이라 확신한다.
동서대 레포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