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밥 먹었어?”라고 묻는 선배에게 선뜻 “예”라고 답할 수 없어 갈등했던 기억이 있다. 이미 먹었다는 말에서 느껴지는 거절의 뉘앙스가 부담스러웠고, 혼자 먹도록 방치하려니 마음이 불편했고, 무엇보다도 모처럼 선배를 알아갈 기회를 놓치기 싫어서였다. 누군가와 식탁을 마주한다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외에 ‘관계와 소통’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하지만 정말로 ‘밥’이 절실한 이유는 이러한 사회적 필요성보다 훨씬 더 원초적인 데 있다. 사람은 ‘생존’을 위해 힘들게 음식을 찾아서 먹고, 섭취한 음식으로 내 몸이 가장 많이 하는 일은 바로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외부의 온도에 상관없이 항상 일정한 몸의 온도를 유지하는 항온동물은 변온동물보다 10배 이상 많이 먹어야 한다. 외부 온도와 무관하게 활동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대신 많이 먹어야 하는 짐을 얻은 것이다.
지하철역에서 처음 마주했던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캠페인’. 솔직히 처음에는 작은 털모자 하나가 생명을 구한다는 자체를 믿지 않았다. 그것도 더운 나라에서 말이다. 그리고 알게 된 진실은, 일교차가 큰 아프리카 지역에서 매년 200만 명 이상의 신생아가 태어나자마자 사망하고 400만 명은 한 달 안에 목숨을 잃는다는 것이었다. 정성을 다해 뜬 털모자는 실제로 수많은 신생아를 구해냈다. 사람의 ‘체온’이 허투루 볼 문제가 아님을 알려준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리고 생물학자로서도 나는 무지했다.
한때 ‘체온면역법’이라는 인식이 일반인에까지 폭넓게 자리 잡았었다. 이는 뇌나 장기 등의 심부 체온을 산소가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37.2도로 유지하는 것이 건강의 기본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면역이란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의 유해 인자로부터 몸을 방어하고 적정상태를 유지하는 능력이다. 면역세포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체온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체온의 변화만으로도 자신의 면역력을 가늠해 볼 수 있게 된다. 체온변화로 인한 면역력 저하는 우리 인체에서 많은 부가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저체온으로 인한 피로, 무기력증, 감기, 식욕부진과 같은 소소한 증상에서부터 냉증의 지속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우울증은 물론 암에 걸릴 확률도 높인다고 알려져 있다.
반면, 높은 체온이 오래 지속될 경우도 고혈압이나 당뇨, 심장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체온은 생활 습관과도 많은 관련이 있다. 기분 좋게 들이켜는 차가운 맥주, 24시간 틀어둔 에어컨, 보온성이 떨어지는 옷 등이 체온을 낮추는 주범이다. 운동부족은 말할 것도 없다. 반대로 과음, 지나치게 매운 음식과 육식 위주의 단조로운 식단은 체온을 올리는 나쁜 습관들이다. 또한, 지나친 스트레스는 교감신경에 작용해 혈관을 수축시킨다. 밥을 먹거나 운동을 하면서 만들어진 열에너지는 혈액을 통해 온몸으로 운반되는데, 혈관 수축으로 혈액이 충분이 공급되지 않으니 결국 체온이 내려가는 것이다. 흡연이나 카페인도 혈류 장애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적정 체온을 유지하며 이 모든 문제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은 ‘운동’이다. 빠른 걸음으로 10분 정도만 걸어도 0.5도 정도의 체온이 상승된다. 그러니 운동을 통해 근육량을 늘리는 것이 체온유지와 면역력 강화를 통해 우리 몸의 건강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것이다.
결국 잘 먹고 운동해서 피가 원활히 돌아 적정한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 모든 건강의 기본이 된다. 몸만 그렇겠는가. 우리가 사는 세상도 따뜻한 ‘피’가 돌아야 건강할 수 있다. 외로움과 배고픔을 느끼는 뇌신경은 매우 근접해 있다고 한다. 대학시절 나의 밥을 걱정했던 선배는 어쩌면 나의 외로움을 걱정했는지도 모른다. 외로움의 온도는 낮고, 소통의 온도는 높다. 흥미로운 건 외로움만큼 소통도 전염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성원 개개인이 만들어내는 지속적인 ‘관계의 온기’는 사회 전체에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체온은 적정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당신은 따뜻한 사람입니까?’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