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에 ‘성광성냥’이란 공장이 있다.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성냥공장이다. 한두 동의 작은 공장이 아니라 성냥제조의 모든 공정과 기계시설이 남아 있고 규모 또한 10여 동이 넘는 대단한 곳이다. 그 공장이 2013년 문을 닫았다. 수요가 없었으니 어쩔 수 없었던 것. 점차 잊히던 성광성냥이 2016년 10월 어느 날 지역언론에 이렇게 등장했다. ‘국내 유일의 성냥공장인 ‘성광성냥’의 손진국 대표가 14억여 원 상당의 공장 부지를 지자체에 기부하겠다.’
손 대표는 항상 성광성냥을 후대에 유산이자 교육현장으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 꿈의 실천이 본인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해 평생 함께했던 공장건물과 기계시설, 그리고 부지까지 기부하는 극단의 선택을 한 것이었다. 성광성냥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애착 없이는 불가능한 선택이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고위층과 기업주 등 가진 자가 자신의 재산 일부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행태를 말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희생과 솔선수범하는 도덕적 책임 또는 의무’로 정의된다. 국내에서도 경주의 최부잣집 이야기를 시작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얘기할 수 있는 예가 많다. 보이지 않게 행해진 선행까지 합친다면 셀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도시 속에서, 우리 삶 속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시민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두드러지는 예는 그리 흔치 않다. 대기업의 기부를 통해 공공건물을 짓거나 큰 공원을 만드는 정도다. 그나마 순수성을 잃거나 대가가 따르는 경우가 많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새로운 경향이 생겨나고 있다. 단순한 기부의 수준을 뛰어넘고 있다. 철저하게 공익을 추구하고, 지역의 미래를 위해 개발 이익을 과감히 포기하고, 지역사회를 위해 가진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증하며, 미래인 육성이나 기술 전수를 위해 사람을 키우고, 그리고 디자인 지원이나 컨설팅을 통해 지역 활성화를 유도하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행태가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역에 그런 길을 걷고 있는, 아니 걸어가려 노력하는 두 기업이 있다. 강선(鋼線)을 만드는 기업은 ‘F1963’이라는 이름으로, 어묵을 만드는 기업은 ‘삼진이음’이란 이름으로, 다른 듯 같은 길을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
먼저, F1963에서의 63은 해당기업의 공장이 건립된 해인 1963년을 뜻한다. 이 공장은 45년 동안 철 와이어를 생산하다 2008년에 문을 닫았다. 유휴(遊休)공간으로 8여 년을 보낸 후, 기능이 정지된 폐산업 시설이었던 이곳이 지역의 신문화를 리드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됐다. 다중(多衆)이 머물 수 있는 특별한 장소로 변신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어린이부터 노년에 이르는 모든 계층이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으며, 음악과 미술은 물론 공연과 책읽기까지 섭렵할 수 있다. 커피와 막걸리가 공존하며, 공장의 녹슨 기둥들과 거친 콘크리트, 그리고 숲과 풀들이 묘하게 조화된다. 처음에는 선뜻 다가서기에 어색했지만 이제 시민은 낯설지 않은 문화 체험의 순간들을 그곳에서 즐기고 있다.
삼진이음은 어떤가. 이음은 말 그대로 ‘잇다’, 즉 지역의 노포(老鋪)에서 전해지는 재래식 가공기술을 단절시키지 않고 다음 세대에 전승시킨다는 의미를 가진다. 대통전수방(大通傳受房)이란 재밌는 이름을 앞세우고 어묵, 두부, 칼, 고구마, 국수, 양복 등을 생산하는 지역 노포의 장인기술을 청년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또한 2017년부터는 70개소 이상의 셀러와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M마켓이라는 지역 시장을 열고 있다. 1년에 서너 번, 봉래동 바닷가와 오래된 물류창고들은 그동안 전혀 상상치 못했던 지역 감성이 흘러넘치는 특별한 장터로 변신하곤 한다. 삼진이음은 지금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지역의 빈집 8곳을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지원을 통해 청년들의 창업플랫폼으로 삼는 도전이다. 빈집들에 채워질 청년들의 활력은 상상만으로도 미소짓게 한다.
필자가 두 기업의 원래 의도와 달리 조금 과장되게 얘기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유사 기업들이 하지 못했던 길을 걸으려 하는 경영철학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유행하는 지역재생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새 시대로 나아가며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크진 않지만 강한 기업들의 새롭게 돈 쓰는 방식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두 기업의 사례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첫째는 잠자던 시민을 깨워 새로운 형태의 사회 공여와 지역의 신문화를 창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기업은 물론 관(행정)과 공익재단, 지역주민의 협업을 기초로 하는 점이다. 셋째는 낡아 외면 받는 것 속에서 보석을 캐고, 약해져 버릴 수밖에 없는 것 속에서 진주를 엮어내는 도전정신과 창의성을 무기로 한다는 것이다.
글을 적는 이 순간, 필자는 부산에 대(大)기업이 없다는 오래된 불평과 낡은 생각을 버리려 한다. 엄청난 두 강(强)기업이 부산을 새롭게 가꿔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맞은 그들의 행보는 분명 또 다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낳게할 것으로 믿는다. 성경의 한 구절이기도 하며,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연설에 나오는 “To whom much is given, much will be required”라는 말이 떠오른다. 많은 것을 받는 사람은 이에 대한 많은 책무가 요구된다는 말이다. 어쩌면 지역에서 펼쳐지고 있는 두 기업의 행보는 가난한 학자들과 예술가들을 후원하여 르네상스시대 걸작들의 탄생과 개혁의 문화를 꽃피우게 했던 이탈리아의 메디치가(Medici family)가 걸었던 길이 될지 모른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정 그런 꿈을 가져보고 싶다.
도시는 살아 있는 유기체다. 어떤 영양분을 어떻게 공급 받느냐에 따라 성장 속도는 달라진다. 그러나 빠른 성장보다는 느리지만 알찬 성장, 비대한 성장보다는 건강한 성장이 도시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 성장이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바탕으로, 모든 주체의 공감과 공유 속에서 이뤄진다면 금상첨화다.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