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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문학, 꿈꾸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 비상구 /정일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4-04 19:37:33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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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4월은 좋은 계절입니다. 이 4월, 지역마다 열리는 문화행사에는 ‘한글 백일장(白日場)’ 이 단골로 들어 있습니다. 백일장에는 예비 문사들이 ‘장원’의 꿈을 가슴에 품고 참가합니다. 백일장의 원뜻은 ‘조선 시대 지방 유생의 학업을 장려하기 위해 시문으로 시험을 보던 일’을 말합니다. 과거라고도 불리던 백일장은 관직으로 나가던 등용문이었습니다. 이제 백일장은 문학행사의 으뜸이며, 많은 참여로 감초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초 중 고 대학·일반부로 나눠 원고지를 받고 가슴 두근거리며 글제 발표를 기다렸다가 다들 골똘하게 자신의 생각을 담는 글을 씁니다.

학창시절 문학소녀 문학소년이라는 ‘가슴 뛰는 시간’을 보낸 세대에게 백일장은 그 열정의 ‘통과의례’였습니다. 자신의 열정에 대한 ‘현장평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대부분 백일장은 당일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입상자를 알리는 방(榜) 앞에서 희비가 갈리며 문학의 꿈이 청포도알처럼 푸르게 영글어 갔습니다. 백일장에서 인정 받고 용기를 얻어 평생 문학의 길을 걷는 백일장 출신 문학도가 많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백일장 출신’입니다. 지금도 백일장을 알리는 현수막을 보면 가슴이 뜁니다.

당시 백일장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문예반’에서 검증을 받아야 했습니다. 요즘은 학교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휴일에 백일장이 열려 누구나 쉽게 참가할 수 있습니다. 예전엔 수업을 빠져가며 백일장에 참석을 했습니다. 누구든 쉽게 백일장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참가를 위해 문예반에서 1차 선발이 돼야 했습니다. 문예반에 가입해 경험 많은 선배들로부터 이른바 창작교육을 받고 작품수준을 갖춰야 ‘백일장 선수’로 출전허가가 났습니다. 평일에 열리던 백일장 참가에는 수업 면제와 시내 버스비와 점심으로 짜장면이 제공됐습니다.

저는 초중고 시절 내내 모두 문예반이었습니다. 곧잘 입상을 했습니다. 고교시절엔 문예부장을 맡았습니다. 문예반 학생들을 데리고 백일장에 참석했습니다. 도서관에 있는 문예반 공간에서 후배들에게 제목을 주고 글쓰기를 시켰습니다. 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훈계를 하면서 말입니다. 당시 문예부는 학생자치기구인 학도호국단 조직에 속해 있었습니다. 공식적인 학생자치 기구였습니다. 백일장에 나가고 교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자연히 제 꿈은 ‘문학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꿈은 문예반에서 백일장을 통해 이룰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문학가가 되려는 첫 꿈을 가진 지 13년 만에, 저는 대학생으로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말콤 글래드웰이 자신의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주장한 ‘1만 시간의 법칙’을 인정합니다. 수혜자라고 생각합니다. ‘1만 시간의 법칙’은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입니다. 하루에 세 시간씩 십 년이면 1만 시간이 됩니다. 저에게 문예반은 그런 시간을 보낸 학습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출판사 ‘아시아’에 서 창간한 창작교육 문예지인 ‘쓰고쓰게’에 따르면, 서울시내 120개 학교를 대상을 한 조사에서 문예반이 남아 있는 학교는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바야흐로 문예반 멸종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방현석 중앙대 교수는 “깊이 읽고 개성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얕게 읽고 획일화하는 글쓰기로 귀결되는 교육과 평가시스템에서 구축됐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교육이 입시교육에 매몰되면서 깊이 있는 독서와 창의적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는 교사의 부재가 문예반을 사라지게 하고 있습니다.

문예반이 없는 시대를 보내는 젊은 친구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틈을 주지 않는 제도교육과 상상력의 부재는 학생들에게 영혼이 없는 글쓰기를 강요할 것입니다. 그것은 학창시절 문학이 아닌 입시 위주의 독서, 즉 지문읽기를 강요합니다. 문제의 답을 찾기 문학이 존재한다면 많은 것을 놓치게 할 것입니다. 굳이 문예반이 아니더라도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쓴다면 창작이 그 학생의 인성교육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독서와 글쓰기는 평생 함께하는 친구입니다. 문학이라는 좋은 친구를 만나는 문예반이 사라지는 일이 안타깝습니다.

맹자의 인생삼락에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라 했습니다. 어디든 기회가 되면 문예반 선생으로 봉사하며 제가 가졌던 변하지 않는 이 꿈을 젊은 친구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시인·경남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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