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결혼 28주년 기념으로 아내와 함께 베트남 다낭을 다녀왔다. 2016년 2월 일본 오키나와로 은혼 여행을 다녀온 지 3년 만의 부부 해외여행이었다. 부산에서 베트남행 항공편은 주로 밤 늦게 출발한다. 시차를 고려해 현지시간 새벽 1시20분 도착했을 때 필자가 탄 항공기까지 7대의 대한민국 국적기가 눈에 띄어 깜짝 놀랐다. 그 국적기가 자정을 전후해 2시간 동안 도착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한 번 더 놀랐다. 항공기 1대에 평균 200명만 타도 그날 2시간 동안 1400명의 한국인이 다낭에 들어온 셈이다. 오전이나 오후 도착하는 항공편까지 고려하면 하루 3000명 정도가 다낭에 입국한다는 것이다. 베트남의 다른 도시나 다른 나라까지 생각하면 연휴나 휴가철이 아닌 평상시 해외로 나가는 인원은 어림잡아 하루에 7만~8만 명은 족히 되리라.

그러고 보니 필자가 첫 해외여행을 한 1991년 1월이 생각난다. 지금이야 대학생도 1년에 한두 번 해외여행을 할 정도로 일반화됐지만 필자가 결혼할 당시는 신혼 여행지 1순위가 제주도였을 만큼 해외여행은 쉽지 않았다. 당시 태국으로 신혼 여행지를 정한 필자는 당시로서 굉장히 시대를 앞서가는 멋진 청년으로 비춰졌다.

지금 젊은이들은 믿기 힘들겠지만 1988년까지만 해도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다. 국가는 해외여행 시 필수적으로 소지해야 하는 여권을 아무에게나 발급해주지 않는 방법으로 국민을 통제하면서 공무원이나 대기업 임원 정도에게만 예외적으로 발급해줬다. 그들 스스로도 나라가 너무 엉망이라고 생각했는지 해외로 나간 국민이 귀국하지 않을까, 가난한 국민이 눈치 없이 해외에서 달러를 펑펑 쓸 걱정을 한 것이다. 결국 서울올림픽이 끝난 다음 해인 1989년부터 해외여행이 자율화되면서 서민도 간신히 여권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해외에서 북한 관련자들과 만났을 때 취해야 할 행동 등에 대한 교육을 먼저 시켰으니 이러나저러나 통제는 여전했다.

얼마 전 모 일간지에 실린 2018년 관광수지 통계를 보니 작년 한 해 동안 외국여행을 한 내국인은 2869만 명이며 이들이 31조9000억 원을 해외에서 쓴 반면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은 1534만 명, 쓰고 간 돈은 17조8000억 원이었다고 한다. 인원과 금액 모두 우리가 외국으로 나가는 경우가 약 2배다. 그런데 이와 같은 관광수지 적자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2001년부터 18년간 줄곧 이어져 왔고, 해외여행 중에 지출 규모가 많기로는 세계 9위에 해당된다 하니 뭔가 잘못되어도 대단히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

야당은 여러 지표를 들먹이며 건국 이래 최악의 경제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정부와 여당은 또 다른 지표를 보여주며 좋은 것은 아니지만 심각한 것도 아니라고 반박한다. 같은 지표라도 관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되기 때문에 정치인의 주장은 어찌 보면 당리당략적 숫자 놀음일 수 있고, 국민은 그런 전문적인 지표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다만 자신의 월급이 늘었나, 늘 사던 물건의 가격이 올랐나와 같이 그냥 피부에 와 닿는 느낌으로 경제 상황을 본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푸념이 많은 것을 보니 국민이 야당의 주장에 동의하는 것 같지만 청년실업이 국가적 재앙 수준이라는 데도 주저 없이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늦은 시간까지 결코 싸지 않은 술집에 모여 있는 젊은이들, 어차피 미래는 불투명하니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는 그들의 가치관은 오히려 궤변에 가까워 보인다. 직업이 없어 보이는 이들이 한 끼에 2만~3만원씩 하는 식당에서 2시간 넘게 점심을 먹는 것도 경제 악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다. 적절한 소비는 경기 부양을 견인한다는 경제 원리도 있지만 가정 경제가 어려우면 본능적으로 지출부터 줄일 텐데 그런 모습이 눈에 안 들어오는 것은 필자 시력이 나빠서일까.

정치권은 경제학자들이나 알아들을 법한 어려운 지표 말고, 현재 우리의 경제 상황을 쉽고 정확하게 진단하여 잘 설명해주길 바란다. 국민이 가정 경제를 잘 관리할 수 있도록 말이다. 여기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부산가톨릭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