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마 하이드록시 부티레이트(GHB). 최근 터진 ‘버닝썬’ 사건 이후 심심치 않게 거론되는 용어다. 한 번 읽어보려니 혀가 꼬인다. 그러니 요즘처럼 속도가 대세인 사회에서 이 같이 이상한 단어를 곧이곧대로 발음하자면 자신도 모르게 우스운 사람이 되게 마련. 간단하게 부르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이른바 ‘물뽕’이다. 이제 발음은 해결됐다. 다음 문제는 이게 무언지 선뜻 감이 오지 않는다는 것. 별수 있는가. 검색의 힘을 빌릴 수밖에.
무색무취한 분말이며 중추신경억제제로 사용되는 약물이라 정의되어 있다. 음료수와 같은 액체에 타서 마시면 효과가 더 좋아 ‘물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복용 후 10분가량 지나면 취한 상태가 돼 몸이 이완되고 기분이 좋아지는데 사용량이 지나칠 경우 뇌사나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무시무시한 설명도 달렸다. 그런 만큼 의사가 처방전을 써주지 않으면 구입이 불가능하다.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갑남을녀에게 이런 마약성 약물은 솔직히 먼 나라 일이라 여겨지기 일쑤. 근데 전문가들은 수요가 너무 많아 물량이 달릴 지경이라고 우려를 나타낸다. 인터넷을 이용하면 ‘물뽕’뿐 아니라 마취제나 수면제 등 온갖 종류의 약물을 처방전 없이 손쉽게 살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더 심각한 것은 마약성 약물이 범죄에 연루되는 것 외에 일반인의 기호품으로도 널리 사용된다는 점이다. 스테로이드가 대표적 사례다. 최근 우리 사회에 ‘몸짱’ 열풍이 불면서 약물의 힘을 빌려서라도 몸을 키우겠다는 사람이 부쩍 늘어난 까닭이다. 스테로이드의 효과는 엄청난 것으로 알려졌다. 단기간 복용만으로도 보통 사람들이 수년 간 노력해야 만들 수 있는 체형에 이른다고 한다.
당연히 위험이 뒤따른다. 학계에는 남성 호르몬의 과다 투입으로 인한 정자 생산 중단, 고지혈증, 심근경색, 심장마비, 관상동맥질환, 급사 등이 부작용 사례로 보고되어 있다. 현직 보디빌더가 유튜브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스테로이드 사용의 참혹한 실상을 알리는 고백을 하며 복용 중단을 호소할 정도다. 누리꾼들은 이를 ‘미투’에 빗대 ‘약투’라 부른다. 그런데도 수요는 줄지 않는다. 그릇된 ‘몸짱 바람’이 불러온 폐해다.
범죄백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마약성 약물과 관련해 적발되는 인원은 연간 1만여 명에 이른다. 2014년 9984명에서 2015년 1만1916명으로 늘었고 2016년에는 역대 최고치(1만4214명)를 기록했다. 2017년(1만4123명)과 지난해(1만2613명)에는 감소세로 돌아섰으나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인구 10만 명당 24명꼴이다. 더구나 국내로 밀반입됐다가 압수된 마약성 약물량은 298.3㎏에 전년(35.2㎏)보다 8.5배나 급증했다. 단속되지 않는 사례를 포함하면 마약류 사범이나 압수 물량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연합(UN)은 인구 10만 명당 마약류 사범이 20명 미만이면 그 나라를 ‘마약 청정국’으로 분류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자격 미달이다. 얼마 전 국회에서 열린 업무보고회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 측은 “마약성 약물이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마약 청정국 지위를 잃었다고 생각한다”는 답변을 했다.
실상이 이런데도 정부 대응은 미약하다. ‘물뽕’만 해도 1990년대 말 처음 적발된 이래 20여 년간 은밀히 거래됐으나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버닝썬’ 사건 이후 검찰과 경찰이 뒤늦게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지만 뒷북을 치고 있다며 국민들이 싸늘한 반응을 보였던 이유다.
식약처가 이달 내놓은 마약류·환각물질 불법유통 근절 대책 역시 실효성이 떨어진다. 사이버조사단의 역할을 강화해 온라인 유통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전담 인력이 크게 부족해 날로 교묘해지는 인터넷 불법 유통 사범에 대처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부에서는 검거 위주의 단속이 최선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마약성 약물에 대한 수요를 줄일 수 있는 근본 대책이 수립되지 않으면 몇몇 공급책을 잡아넣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기는 힘들다는 논리다. 청소년 계도도 시급하다. 마약성 약물의 주된 구입 경로가 인터넷과 SNS여서 이에 능숙한 청소년들의 접근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지난해 검거된 마약류사범 가운데 10대는 104명이나 됐다.
전문가들은 한국은 그래도 다른 나라에 비하면 여전히 마약 청정국 수준이 아닌가라는 환상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한다. 마약성 약물이 생각 이상으로 가까운 곳에 숨어 있어서다. 정부의 강력 대응과 개개인의 각성이 없다면 이 사안은 언젠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시한폭탄이 될 수밖에 없다.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