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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칼럼] 행복, 복지국가, 그리고 비례대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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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3-28 19:32:34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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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유엔이 정한 ‘세계행복의날’을 맞아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공개한 2019년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156개 국가 중 가장 행복한 나라는 10점 만점에 7.769점을 얻은 핀란드였다. 다음으로 덴마크(7.600) 노르웨이(7.554) 아이슬란드(7.494) 네덜란드(7.488) 스위스(7.480) 스웨덴(7.343) 뉴질랜드(7.307) 캐나다(7.278) 오스트리아(7.246)가 10위권에 들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들 나라는 모두 선진 복지국가에 속한다. 이번 조사에서 신자유주의 체제의 대표국인 영국은 15위(7.054), 미국 19위(6.892), 일본 58위(5.886)였다.
복지국가는 ‘포용적 성장’을 추구하는 나라다. 경제는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복지·분배는 보편적이고 적극적이라는 뜻이다. 사람에 대한 선제적·예방적 투자가 보편주의 원칙하에 생애주기별로 잘 제도화돼 있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 기회의 평등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복지국가에선 누구나 일을 통해 자립적 삶을 꾸리지만 각종 위험으로 노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와도 소득이 단절되거나 사회서비스를 소비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 연대와 사회공공성 수준이 높다는 뜻이다. 조세부담률이 높아도 조세저항은 작다. 인적·사회적 자본이 확충돼 있고, 이는 경제성장의 유리한 조건이 된다. 경제와 복지는 이렇게 유기적으로 통합돼 있다.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행복 점수를 산출하는 데 사용되는 6가지 지표를 살펴보면, 행복 수준이 높은 나라는 모두 포용적 성장을 추구하는 복지국가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우선 ‘1인당 국민소득’이다. 이 지표는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면 복지국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둘째, ‘건강 기대수명’이다. 이는 한 사회의 경제성장과 복지·분배 수준을 반영한다. 미국처럼 국민소득이 높더라도 복지·분배가 부실해서 소득불평등이 심하고 사회적 연대와 공공성이 취약한 나라는 ‘건강 기대수명’이 높을 수 없다. 셋째, ‘사회적 지지’다. 이것은 연대의 제도화 수준에 따른 결과물로 시장만능주의 사회에선 기대하기 어려우며 복지국가의 사회적 자본에 비례한다. 넷째, ‘내 삶을 선택할 자유’다. 이는 자유시장의 소극적 자유를 넘어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선택해 자기 주도적 삶을 살아갈 권리(적극적 자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정도를 말한다. 포용적 복지국가에선 사회구성원 모두가 보장받지만 시장만능주의 체제에선 운 좋은 사람들만 이런 기회를 누린다. 다섯째, ‘관용’이다. 이는 사회적 약자를 돕는 정도를 말하는데, 사회적 결속을 촉진한다. 여섯째, ‘부패지수’다. 승자독식의 시장만능주의 세상은 연대와 포용의 복지국가 체제보다 부패지수가 높을 수밖에 없다.

경제·사회 체제가 포용적이라야 국민이 행복해진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충분히 검증된다. 과거 영국은 유럽에서 뒤쳐진 나라였지만 근대 시기부터 가장 돋보이는 나라가 됐다. 산업혁명을 주도하며 발전국가의 선봉에 섰던 것인데, 그것은 당시 영국이 세계에서 가장 자유롭고 포용적인 경제·사회 체제를 구축했기 때문이었다. 미국도 영국과 같은 길을 걸었고, 이후 영미식의 자유방임적 시장경제 체제는 당대의 높은 포용성으로 인해 압도적인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1980년대 이후 영미식의 신자유주의 체제는 이들 나라의 포용성 수준을 끌어내렸고 그만큼 체계적으로 소외되고 배제당하는 인구가 많아졌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근대 발전국가 시대의 높은 경제·사회적 포용성이 이후 그 효용을 다했고, 이제 이들 나라는 주요 국가 중 배제와 불평등 수준이 가장 높다. 그 대신 경제·사회적 포용성이 높은 복지국가 체제가 등장했다. 대표적 사례가 북유럽 복지국가들이다.

정리하자면, 영국과 미국이 근대 발전국가 시대를 주도했던 것은 당시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포용적이었던 경제·사회 체제 덕분인데, 이것을 가능하도록 했던 것은 당시의 ‘포용적 정치’였다. 다른 나라가 절대왕정이나 낡은 틀에 묶여 있을 때 영국과 미국은 높은 수준의 정치적 자유를 허용하고 선거제도를 통해 의회민주주의를 제도화했다. 당시의 포용적 정치가 높은 수준의 경제·사회적 포용성을 보장했고, 이것이 압도적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 동안 영국과 미국의 정치 및 경제·사회 체제는 주요 국가 중 포용성이 가장 낮아졌다. 이는 지난 100년에 걸쳐 유럽 복지국가들이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를 통해 정치 체제의 포용성을 압도적으로 높여오는 동안 영국과 미국은 배제와 소외를 양산하는 승자독식 선거제도와 낡은 정치 체제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행복 순위 10위권에 속한 나라 중 캐나다를 제외하면 모두가 비례대표제 방식의 선거제도를 갖고 있다.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이 그대로 의석 비율로 연결되는 선거제도를 통칭한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네덜란드 등 OECD 24개 국가는 비례대표 의석만 존재하는 전형적인 비례대표제를 시행한다. 지역구 의석이 있는 나라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함으로써 같은 효과를 얻게 되는데, 독일과 뉴질랜드가 여기에 속한다. 한국과 일본은 영미식의 승자독식 단순다수대표제를 기본으로 삼고 일부 의석으로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운영하는데, 이는 정당 득표율과 의석 비율이 비례하지 않는 ‘무늬만 비례대표제’다.

승자독식 선거제도는 양당제, 양극화, 불평등, 불신, 갈등, 대립, 배제, 그리고 지역주의를 낳는다. 그러므로 이런 선거제도를 가진 나라는 행복과 거리가 멀다. 한국의 행복 순위는 54위(5.895), 일본은 58위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는 배제의 정치를 고착화하고 경제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을 심화시켜 국민행복의 포용적 복지국가 건설을 가로막는다. 결국 선거제도의 비례성이 강화될 때라야 다당제의 합의제 민주주의를 통해 정치 체제가 포용적으로 바뀌고, 포용적 복지국가의 실현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비례대표 전면 폐지와 의원정수 10% 감축을 제안했다. 이는 포용적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세계사적 흐름과 배치된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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